-
-
연애의 책 ㅣ 삼인 시집선 1
유진목 지음 / 삼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유진목
만두를 먹었다 나는 아침에 만두를 먹는 걸로 몇 차례 핀잔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만두를 먹지 않는다
나의 꿈은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요 하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만두가 식기 전에 마저 먹었다
한밤
-유진목
신발을 이렇게 예쁘게 꺼내놨데
너하고 나하고 예쁘게 떠나려고
그믐
-유진목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과를 주워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몸을 씻고 일찍 이부자리에 누웠다
밤에 모과 한 알이 부엌에 놓여 있다
나는 모과를 훔치려고 더 어두워졌다
공책에 시를 옮기는 시간만이 남았다. 연필 깎이에 연필을 돌린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 빗소리는 묵음이다. 보일러 연통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이다. 그게 빗소리를 대신한다. 유진목의 『연애의 책』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누구한테 들었던 것일까. 소리를 듣긴 했는데 기억은 없다. 시집을 주문하고 받아서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한참을 잊어버린 척 지냈다. 책상 위에는 시집. 시집이 있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내게는 연필 수집벽이 있다. 연필만 보면 사고 싶다. 진한심이라고 해서 샀는데 막상 써보면 진한심이 아니어서 실망. 그래도 연필을 쓴다. 우리 사이에 시를 베끼는 연필 소리만이 남아도 좋다. 만두를 먹는 아침을 상상하고 잠시 외출을 해도 될까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두기도 하고. 모과를 선물하기 위한 어두움을 준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