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 - 드라마 <안나> 원작 소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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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자주 이따금씩 거짓말을 한다. 누군가를 속인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속이면서 안심하고 싶은 마음에. 거울을 보면서 나는 괜찮게 생긴 거야. 네가 산 그 옷은 꽤 잘 어울린다 같은. 별 볼일 없는 일에 대해서. 그 순간이 지나면 열패감에 빠지곤 한다. 어린 나이에는 거짓말을 하면서 근사한 나를 연출해 보이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거짓말보다는 침묵이 낫다는 것을.

정한아의 장편 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매혹적인 소설이다. 소설 한 편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박력 있게 이야기만으로 밀고 나간다. 한 번 읽으면 그 자리에서 계속 읽게 된다. 한 여자 혹은 한 남자의 삶을 조망하면서 거짓말로 이루어진 세계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소설가이지만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한 '나'는 우연히 신문에 실린 광고 하나를 본다.

소설을 쓴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였다. 그 소설은 오래전 공모전에 낸 '나'의 소설이었다. 본심에도 오르지 못한 소설이었다. 신문사에 연락을 하고 자신이 쓴 소설임을 밝힌다. 더 이상 신문에 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다시 연락이 왔고 상대는 그 소설을 남편이 썼다고 말한다. 남편은 6개월 전에 실종되었다고 했다. '나'는 여자와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이 서른여섯의 이유미, 여자라고 들려준다. 본명은 이유미 그전에 이안나 자신에게는 이유상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소설가인 '나'는 즉각적으로 사연에 반응한다. 여자의 남편은 철저하게 자신이 여자임을 속였다. 결혼까지 했으며 결혼 후 일주일이 지나자 사라졌다. 비밀이 많은 사람. 늘 서재에 틀어박혀서 무언가를 쓰던 사람.

'나'는 이유상 즉 이유미가 썼다는 일기장을 토대로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간다. 『친밀한 이방인』은 비밀과 거짓말에 휩싸인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파헤쳐 나간다. 과연 우리는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유미는 자신이 의도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 앞에서 선택 대신 방관을 취한다.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닌 것들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소설을 쓰는 '나' 역시 인생을 어쩌지 못했다.

이유미의 삶의 형태를 알아갈수록 '나'는 각성한다. 삶의 선택권을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에게도.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나여야 한다. 어떤 선택으로 삶이 흔들리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밀한 이방인』은 묻는다. 쉽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 질서를 연기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것이다. 거짓말로 무장한 질서는 인생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이방인이지만 친밀함을 느낀다. 이러한 역설은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힘을 마련한다. 소설을 쓰지 못하면서도 소설적 이야기에 매달리는 '나'는 이유미를 소재로 소설을 쓰려 하지만 실패한다. 우선 자신의 인생에서 이방인이기를 거부한다. 타인의 삶에서 마주쳤던 '나'의 과오를 바로잡고 싶어 한다.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야 기막힌 반전을 보여준다. 잘 짜인 사기극이었지만 삶을 지켜나가고 싶어 했던 누군가의 행복을 바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정말 잘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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