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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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은 이제 문학의 길을 찾은 듯하다. 소설가로서 해야 할 일을 오래 고민하고 나서야 방향을 잡은 것이다. 문학이 왜 필요한지 자신이 어떤 역할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소설로써 담론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는데. 윤이형은 절필을 선언했다.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알려왔다. 말이란 무엇인가. 어떤 말은 힘이 강하고 어떤 말은 약한 것인가. 쉽게 번복되는 말이 무성해서 이제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 말만은 다시 바뀌길 바란다.

『붕대 감기』가 마지막 소설이 아니었으면 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범주를 넓혀서 인간으로서의 목소리가 담긴 소설 『붕대 감기』를 써 놓고 말을 멈춘다면 안 될 일이다. 소설은 다양한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다. 헤어 디자이너, 워킹맘, 출판 기획자, 전업주부, 대학생, 교수, 퇴직자의 하루를 연결 짓는 단 하나의 서사는 그들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아픈 아이를 병간호하면서 지쳐가는 은정은 다른 여성과의 연대를 희망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었다. 일이 아닌 관계란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고 그 누구도 은정에게 안부 인사를 물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우정이라는 고대어처럼 들리는 그 말이 듣고 싶다. 우연히 미용실 앞을 지나가는 율아 엄마인 진경이 마카롱을 건네지 않았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헤어 디자이너 지현에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연대는 약하다. 어떤 연대는 분열이다. 『붕대 감기』는 연대 안에 도사리고 있는 협잡과 의심을 배제할 수 있다면 그것을 희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으로 쓰인 소설이다. 의심을 희망으로. 절망을 우정으로. 각자의 나로 이루어진 약한 관계를 이어가자고 말한다. 진경과 세연은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붕대를 감아주는 일로써 연대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그 사건으로 인해 둘은 친구가 되었다.

여성들은 우정을 쌓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누가 던진 것일까. 『붕대 감기』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로 보이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괜찮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나에 대해 무한히 알고 있지만 서로를 모른다. 모른 채 오해하고 갈등하고 헤어진다.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 자세로 삶의 그늘을 응시해야 한다.

진경은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가 되렴.' 윤이형 역시 이 말을 들려주고 싶어 『붕대 감기』를 썼다. 내가 나일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네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윤이형은 소설을 썼다. 자신이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써 말이다. 그런 그가 왜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할 수밖에 없나. 『붕대 감기』 이후에 윤이형은 더 많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면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소설가가? 우리는 분명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해주던 소설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문학이 이것밖에 안 된다고 슬퍼하다가도 문학은 이것밖에 안 되는 힘으로 나를 일어서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안다. 분노의 힘으로도 다시 목소리를 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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