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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지음 / 우드스톡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른이 되면』의 작가 장혜영은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그 채널의 이름은 '생각많은 둘째언니'이다. 책을 읽어보니 알겠다. 이 언니 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녀의 한 살 어린 동생은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어린 시절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대신에 혜영은 동생 혜정을 살뜰히 돌보왔다.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가만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혜영이었지만 동생을 돌보는 데에는 소홀함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장애가 있는 혜정을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혜정은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열네 살이 되던 해 경기도에 있는 시설로 들어갔다. 18년 동안 혜정은 시설에서 살았다. 그동안 언니 혜영은 생각과 고민이 깊어갔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동생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잘한 일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좋은 게 있어도 동생이 생각나 누리지 못했다. 혜정이 있던 시설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혜영은 탈시설을 결심한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하더니 장혜영은 글을 잘 쓴다.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긴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이 하고 있는 많은 생각들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혜영의 생각은 내가 모르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암묵적인 차별이 존재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에서 혜영은 동생과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원한다.
세상이 변하길 원하며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어른이 되면』은 시설에서 동생을 데리고 나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6개월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건과 자격 앞에서 자매는 혜택을 받을 수조차 없었다. 언니 혜정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이란 친구들의 지원밖에 없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일상을 올리고 텀블벅 후원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까지 국가의 도움은 없었다.
무너지지 않는다. 동생과 살아가야 하기에. 혜영은 일상을 다듬어 나간다.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서른이 된 혜정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른이 되면'이었다. 혜정은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로 현재의 행복을 유예 당해야 했다. 시설에서 혜정은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방 두 개가 있는 집을 구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혜영과 혜정은 어른의 시간을 살아간다. 무사히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의 가사로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한다. 혜영의 다정한 친구들은 기꺼이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눈다. 혜영은 자신의 숨겨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뭉클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야기하기 바빠 남의 슬픔을 들으려 하지 않는 면이 있다.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모이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이 사라지고 사회적 제약이 허물어지는 그날까지 언니 혜영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의 하루가 아침 햇살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단지 운이 좋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으로 누군가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최악의 어른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한 여정이 『어른이 되면』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