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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어나더커버 특별판)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쓰지 않고는 넘어가지 않는 시절이 있다. 그때의 기분, 바람, 생각, 냄새, 음악, 이야기가 잊히질 않아 내내 마음이 아픈 시절이.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모른척했던 어느 시간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으면 살아지지 않는다. 미숙해서 미안함을 느끼고 돈이 없어서 불안으로 보냈던 그때를 용기 내어 꺼내 놓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쓰는 건 바보나 하는 일이니까. 허구라는 형식을 빌려서 쓴다.
임솔아의 『최선의 삶』은 꼭 써야만 하는 소설이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그토록 폭력적이었고 암담했으므로. 임솔아는 그 시절을 악몽이라고 부른다. 대학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은 그토록 잊고 싶어 했던 10대의 불안과 고독의 내면을 촘촘한 언어로 다룬다. 소설을 읽기 전 당선 소감과 인터뷰를 먼저 읽었다. 소설로 들어가는 열쇠 하나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중학교 때는 가출 소녀였고, 고등학교는 중퇴했어요.' 임솔아는 자신의 10대 시절을 이렇게 요약한다.
가출을 했던 그때의 일이 『최선의 삶』의 바탕이 되었다. 위장 전입을 해서 전민동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주인공 '이강이'와 친구들의 이야기. 외부인과 내부인으로 나누면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려 드는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강이의 이야기. 키우는 개와 물고기에게 자신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붙여주며 어쩔 수 없이 자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 소설을 이루는 각각의 일화는 임솔아의 경험으로 빚어진다. 내내 잊히질 않는 악몽으로써 자리 잡는다.
성장 소설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무엇으로도 치장할 수 없는 불온함과 음습함이 있다. 밝고 명랑하고 모두가 꿈을 이루고 역경을 견디면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면 『최선의 삶』은 최선이 될 수 없다. 친구들과 나누는 멋진 우정, 단란한 가족으로의 위로 또한 없다. 이토록 어둡고 암담한 성장 소설이라니. 그런데 『최선의 삶』은 끝내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로 돌려서 이야기한 성장의 진실이 담겨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임솔아, 『최선의 삶』中에서)
지나고 나면 추억과 그리움의 시간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긍정하고 인정하면서 살아갈 줄 알았다. 어쩔 수 없었음을 어쩌지 못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강이는 완벽한 울타리가 되리라고 믿었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밀려난다. 선택하지 않은 배척이었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강이는 이제는 자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른이 되어 어른으로 사는 삶이 최선이 될 수 있을까.
툭툭 끊어지고 감정을 생략한 문장은 뜨거웠다. 일부러 차갑고 건조하게 쓴 것 같은데도 『최선의 삶』은 몇 번이나 울음을 참게 만들었다. 내 마음과 의도를 왜곡하는 세상이 미워서. 어른 같지도 않은 게 어른이라면서 주접을 떨어서. 다만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용기를 가져야 하고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는 희망을 주지 않는다, 『최선의 삶』은. 진심은 파괴되기 싶고 꿈을 방패막이 삼아 살아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려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