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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행방 ㅣ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평점 :
요양원에서 일하던 동생이 화재로 죽는다. 언니 해원은 남자의 빌라에 찾아와 동생에게 그날 일어난 일을 듣는다. 남자는 죽음을 본다고 했다. 동생이 요양원에서 횡령과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돼요. 제 동생뿐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요." 안보윤의 『밤의 행방』 속 이야기이다. 소설은 수련회에 놀러 간 아이가 화재로 죽고 삶이 무너진 주혁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미래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죽음은 순식간에 덮쳐와 삶을 앗아간다.
『밤의 행방』에는 다양한 죽음의 형태가 등장한다. 아이를 잃고 아내마저 떠나자 방황하게 된 주혁은 '천지선녀'라는 점집을 차린 누나의 집에 머무른다. 그곳에서 수호신 혹은 사신이라고 불리는 나뭇가지와 만난다. 꿀을 좋아하는 나뭇가지는 주혁과 대화를 시작한다.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볼 수 있는 나뭇가지는 누나의 집에 찾아온 점쟁이의 동생이 남긴 유서를 찾아준다. 그날부터 주혁은 나뭇가지가 말해주는 죽음의 순간을 대신 전해준다.
가출한 딸의 행방을 물으러 왔다가 오히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남자는 그 일이 진짜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의심을 한다. 선의를 가장한 의도적인 배제는 아니었을지 묻는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할머니의 죽음을 물으러 오는 학생은 그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도 한다. 반이라고 불리는 나뭇가지가 들려주는 죽음의 순간은 유예가 될 수 없다. 아이의 출산을 앞둔 여자에게 주혁은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그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죽음이 담긴 미래를 알고 싶은가. 그걸 알면 죽음을 늦추거나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밤의 행방』은 그렇게 물어온다. 알고 싶지 않다. 아니 알아서는 안 된다. 누구도 죽음이 담긴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사방이 죽음으로 흥건한 이곳에서 막아야 할 죽음이 있었다. 소설은 그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죽지 않을 사람들이 있었다.
『밤의 행방』의 결말은 슬펐다. 현실의 일이 소설에 끼어들고 있었다. 행복한 결말 같은 건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에나 나오는 환상이다. 현재만이 정답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현재. 지독한 슬픔을 견뎌낸 자가 걸어가야 할 오늘. 누구도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아야 한다. 안보윤은 죽음의 행방을 알고 싶어서 『밤의 행방』을 썼다. 사라진 죽음에게 조용히 보내는 위로의 소설. 잘 가라고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