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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19 ㅣ 소설 보다
강화길.천희란.허희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으며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가을이 끝나고 나서야 나오는 가을의 소설. 지나간 계절의 시간을 떠올리며 세 편의 소설을 읽는다. 우리에게 가을이 있었구나. 다행히도 사계절이어서 그렇게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실감할 수 있구나 한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너의 얼굴 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계절을 살아간다. 겨울에 읽는 가을의 소설.
강화길의 「음복」, 천희란의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허희정의 「실패한 여름휴가」.
한 집안에 한 명씩 있다는 악역의 역사를 훑어가는 강화길의 시선은 이채롭다. 「음복」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명절이나 가족 행사 때 모인 그녀들의 악담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인지를. 소설은 제삿날 모인 가족의 풍경을 묘사한다. 이제 막 결혼을 한 나의 입장에서 그녀들은 이상하게 보이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전복된다. 나의 집안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고 억눌린 역사를 가진 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어이 떠올리고야 마는 것이다.
천희란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미투로 촉발된 사회 문제를 소설 안으로 들고 온다.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는 사랑을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의 과거를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때는 문학병을 앓았고 지금도 치유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안다. 문학은 삶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허희정은 언어의 자리를 매만진다. 「실패한 여름휴가」에서 내가 발견한 건 미완성으로 그려낸 과거의 희망이었다.
여기 커피와 노트북이 놓여 있다. 나는 마침 어쩌다 주운 동전 같은 휴일을 가졌고 겨울 휴가를 또 기다리고 있다. 소설 세 편을 다 읽으므로써 가을을 살았다고 여긴다. 숫자에 불과한 통장 잔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겨울의 짧은 오후를 사랑한다. '실패한 겨울휴가'를 원하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