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
김미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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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의무적으로 책을 읽었다. 원래 읽는 걸 좋아하니까 읽고는 있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 내 식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건지. 깨달음과 성찰, 자기반성으로 일관하는 책을 읽는 동안은 자꾸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야기. 이야기가 필요했다. 복잡한 구조 말고 단순한, 지금 여기를 말하는 이야기.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무수한 공감을 하게 해줄.

그런 점에서 김미월의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에 실린 열 편의 이야기는 반가운 존재였다. 나의 현실과 다르고 미묘하게 생각이 어긋나는 책을 읽던 나에게 찾아와준 고마운 존재. 어쩌자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은 죄의식을 감춰둔 채 나이만 먹어버렸다.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속 인물들은 나이만 먹어버린 자신을 낯설어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의 어느 순간에서는 타인을 위해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한동안 잘 감춰두었는데 죄의식은 주머니에 넣어둔 송곳처럼 의식을 찌른다.

혼자 사는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서른아홉이 될 때까지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며 여행을 다니는 여성이 있고 지구 종말의 시간을 서른 시간 앞두고 술을 마시다가 다음날 숙취로 깨어나 황도 통조림을 먹으려는 취준생이 있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2월 29일에 보낸 여행지의 기억을 잊지 못하다가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읊조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른 채 혼자 지내다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고 가족도 없다. 결혼하는 오빠를 위해 원룸 보증금을 빼줘야 하는 소설가 지망생. 학창 시절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쓴 편지가 이상하게 작용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김미월은 묻는다. 당신은 정말 어른이 되었느냐고. 누군가를 책임지는 게 아닌 자기 자신 즉 당신의 인생을 책임질만한 사람으로 자랐느냐고.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에 담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다 보면 꼭꼭 숨겨둔 과거의 잘못이 드러난다. 잘못이라고 하지만 그건 의도하지 않은 흔히 하는 실수라고도 깨닫는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는 게 삶이다. 지구 종말이 무서운 게 당장 내일이 없다는 게 아닌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김미월이 소설 속으로 불러온 어른이들은 지금 이곳의 의미를 찾으러 다닌다.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문장으로 쓰인 소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문학적 허세 없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인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염려하느라 아까운 현재를 소비하는 어른이들. 사랑이 없었다고 말하며 현재를 위로하며 버티는 어른이들. 잘못이 있다면 잘못인 줄도 모른 채 뻔뻔하게 살아가는 무책임에 있다. 나와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제와 오늘 내일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구가 망해도 택배는 오고 피아노는 연주된다. 오늘의 의미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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