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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12월
평점 :






집 앞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다. 나무 한 그루에 알록달록한 전구를 달아 놓았다. 하트와 눈사람 모양의 장식물에도 불빛이 반짝거린다. 한때 유명했던 가수가 다시 나와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불러 주었다.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을 들으며 불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마음이 떠올랐다. 연말이라고 나무에 불빛을 밝혀둔 누군가의 마음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불빛으로 장식된 나무를 바라본다. 이곳의 고요와 따뜻함이 다른 곳으로도 퍼지기를 바라며.
미스터리 소설의 유명한 편집자 오토 펜즐러가 엮은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는 고요와 따뜻함 그리고 소란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라는 독자라면 사랑해 마지않을 책이다. 약속이 없어 매해 찾아오는 나 홀로 집에 사는 케빈과 함께해야 한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나 늘어놓으며 자랑만 난무한 자리에 가고 싶지 않다면 우아하고 무섭고 놀라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담긴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를 추천한다. 당신은 빠져든다.
열다섯 편의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당신을 특별한 세계로 초대한다. 잃어버린 복권을 기지를 발휘해 찾으며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야기에서부터 경찰 조사실에서 벌어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한바탕 해프닝, 병에 걸린 아이를 위해 크리스마스 일찍 왔으면 하고 바라는 딱한 처지의 아버지의 사연. 도둑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며 그날로 손을 씻게 만드는 신부의 재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다면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남편.
각각의 이야기는 완벽한 서사를 갖추면서 독자를 이야기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반전까지도 완벽하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이야기만 있으란 법이 있는가. 동년배들, 알지 않은가. 인생이 그림 동화책 속의 삽화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다는걸.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의 미스터리들은 일상에 지친 우리를 한숨짓고 눈물 나게한다. 기적을 꿈꾸며 살지만 기적은 매 순간 살아내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헷갈리고 현대적인 고전적이며 무서운 놀라운' 크리스마스에 펼쳐지는 사건에서 인생의 묘미를 생각한다. 즐거운 순간을 떠올리며 잠에 들고 아침에 눈을 뜨고 햇살을 감상한다. 즐거울 날을 기다리지만 즐겁지 않아도 좋다고 인정하는 것. 20년 전에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내내 애도 중인 남편이 있고 사건을 저지르고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발견한 메모로 다른 인생으로 도망가는 도우미가 있다.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면 들여다보지 못할 낯선 삶의 순간.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를 읽고 있다면 올 한해 울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는 증거가 되겠다. 오토 펜즐러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를 방대한 분량으로 엮었다. 국내에는 2018년에 나온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와 지금 막 나온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로 출간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작은 행복을 기다리는 이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크리스마스 선물.
울어도 괜찮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주시지만. 우는 어른이에게는 위로와 즐거움이 담긴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를 들고 찾아오셨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읽는 소설은 지치지 않았고 주저앉지 않은 우리를 다독인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크리스마스에 펼쳐지는 이상하고 기발한 미스터리 안에는 다가오는 내년을 준비할 용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