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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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애인과 함께 살다가 그의 집을 떠나야 하는 여자 주인공과 동생의 변호사 수임료를 내기 위해 자신의 집을 셰어하는 남자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러브 스토리. 피치 못할 사정으로 두 남녀가 한 공간을 공유하고 그들이 정한 시간 외에는 만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소통은 포스트잇으로 한다. 간단히 전할 말을 쪽지에 남긴다. 베스 올리리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동안 이 책 『셰어 하우스』를 썼다.

편집자로 일하는 티피는 당장 살 곳을 구해야 한다. 애인은 변심했고 티피에게 나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란 곰팡이가 가득한 그야말로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 곳이었다. 런던이라는 가혹할 정도로 집세가 높은 도시에서 티피에게 선택이란 없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셰어 하우스 공고만이 있을 뿐이다. 밤에 간호사로 일하는 리언이라는 남자가 올린 글이었다. 침대를 나눠 써야 하는 조건이지만 시간대가 다르므로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은 없다.

『셰어 하우스』는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티피와 리언은 포스트잇으로 소통하다가 점점 서로에게 녹아든다.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지쳐 있고 외로운 상태다. 티피는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전 남자친구 저스틴이 자신을 감정적으로 학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리언은 강도 용의자로 실형을 선고받은 동생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티피는 과거와 이별을 해야 하고 리언은 현재의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만나면 안 된다는 규칙이 깨지면서 그들은 불행을 가진 채 만난다.

서로의 결핍을 알아본 티피와 리언은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재 자신이 처한 사정을 숨김없이 들려준다. 사랑의 시작은 이렇다. 서로를 알아보고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기. 망설이지 않고 내면의 슬픔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면 마음의 문이 열린다. 열린 문으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셰어 하우스』는 티피와 리언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해라는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오해의 서사도 준비되어 있어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두 남녀의 즐거운 사랑 이야기만 있지 않다.

연인 간에 지켜져야 할 관계의 평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티피는 저스틴과 사귀는 내내 그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기분에 맞추고 일시적으로 헤어져도 다시 돌아가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저스틴은 티피와 헤어져 놓고 그녀가 살고 있는 집까지 찾아온다. 티피는 그에게 리언과 셰어하고 있는 집의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티피는 자신이 잘못 했다고 생각했다. 리언을 만나면서 티피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다.

소설은 환경에 의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티피는 모험을 한다. 출판사 동료가 제시하는 조건의 집으로 가지 않는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정보만 가지고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린다. (물론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집세 때문이기는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암흑뿐이라서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절망할 것도 좌절할 것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누군가가 당신 곁에는 존재한다. 당신만 모르고 있다.

티피는 선택을 한다. 낯선 곳으로 자신의 삶을 던진다. 당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건 당신이 하는 선택이다. 집도 없는 다시 쓰자면 집만 없만 티피였다. 타인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할 줄 안다, 티피는. 그리고 그녀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나의 인생이 막막하여 뚫고 나갈 수 없다고 느낄 때 인간에 대한 예의만은 잃지 말라고 소설 『셰어 하우스』는 말한다. 단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소설은 행복, 내 생활의 책임, 미래에 대한 기대 잃지 않기라는 따뜻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기차에 앉아 지나치는 풍경을 뒤로하고 소설을 썼을 베스 올리리의 시절을 상상해본다. 행복을 꿈꾸지 않고는 쓰지 못했을 이야기. 나에게 주는 달콤한 위로라고 되뇌었을 소설 속 문장들.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을 소설을 쓰리라 다짐하는 결의에 찬 마음. 당신의 마음속 빈 공간을 향해 어느 날 낯선 이가 문을 두드린다. 『셰어 하우스』는 기꺼이 그 문을 열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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