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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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단편집 『겨울방학』에 담긴 열 편의 소설은 겨울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선물 같다. 학기는 끝나고 친구들과 잠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때. 방학 숙제가 적힌 통신문을 가방에 넣고 집으로 달려갈 때. 등 뒤에서 나의 이름을 불러 한 권의 책을 손에 쥐여준다. 긴 밤과 추위가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쓸쓸함을 달래렴. 책의 표지를 열면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있는 책. 『겨울방학』을 펼쳐서 읽는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이제는 방학을 가질 수 없다. 친척 집을 찾아가거나 놀이공원을 다녀도 좋을 만큼 긴 휴식 기간을 가질 수 없다. 주말이 있음에 감사해할 뿐이다. 『겨울방학』은 고단한 어른 생활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하루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장난감 회사에 취업해 쓰지 않아야 할 화학 제품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어쩔 줄 모르는 어른이 있고 가난한 고모와 보냈던 한 철을 기억하는 청춘이 있다.

힘을 주지 않은 편안한 문장으로 쓰인 소설을 읽어나간다. 일부러 감동을 주기 위한 서사가 없어서 좋았다. 평범한 어느 하루를 그대로 떼어내서 보여준다.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유년의 기억을 데리고 온다. 세상에 적응하고 싶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가는 하루에서 나의 자리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다. 일하지 않으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이 『겨울방학』의 곳곳에 등장한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카드 일시불 결제가 걱정되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배운 건 무엇이었을까. 표제작 「겨울방학」은 그것을 묻는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전부인 세상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고모의 집에서 겨울방학을 보내야 하는 어린 '나'는 묻는다. 고모와 고모를 둘러싼 삶에 대해, 거리낌 없이. 가난을 배우게 하고 싶지 않아 고모는 겨울방학 내내 '나'를 데리고 다닌다. 고모가 감당해야 했을 부담이 잊히지 않아 어른이 된 '나'는 마음을 숨긴다.

욕심내지 않으려고 한다. 최진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최진영의 마음이기도 하리라.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불행도 꿋꿋하게 헤쳐나가겠다는 다짐보다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크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을 응시한다. 부정하거나 쓸쓸해하지 않는다. 겨울은 깊어지고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는 친척의 연락이 없을 수도 있다. 고독한 어린이는 고독함도 잊은 채 책들을 독파해 나간다. 고아라고 말해도 배척하지 않는 세계로 가닿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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