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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삶 ㅣ 문학동네 청소년 45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걸 아는 동년배들 소리 질러!) 하나의 상황을 주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가정을 보여준다. 그래 결심했어라고 말하며 인생을 선택한다. 자신이 선택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길로 가버린다. 어떤 게 더 나은 인생인지를 보여주기 보다 우리 앞에 펼쳐질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며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서 나의 인생은 어떤 모습인지를 상상하게 만들어서 인기가 있었다.
이금이의 장편 소설 『허구의 삶』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둘 나온다. 열아홉 살에 성장이 멈춰진 채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서글픈 아이들. 허구와 지상만. 이름 때문에 하나는 뻥쟁이 혹은 호구라고 불리며 다른 아이는 지하만으로 통한다. 충북 제천에서 외삼촌 집에 얹혀사는 상만은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소년이다. 엄마는 미혼모로 사고로 죽었다. 상만이 다니는 학교에 서울에서 허구가 전학 온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아이들은 그렇게 한 교실에서 만난다.
쌀가게를 하는 외삼촌을 도우며 쌀 배달을 하는 상만은 우연히도 허구의 집으로 배달을 간다. 할머니처럼 보이는 허구의 엄마. 모든 것이 갖춰진 그 집에서 상만은 허구의 다른 모습과 만난다. 가족의 품이 그리운 상만은 아들의 친구라고 살갑게 대해주는 허구의 엄마가 좋다. 책상과 책장, 침대까지 갖춰진 허구의 방에서 상만은 공부를 하고 허구와 점점 친해진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허구는 자신의 문제집과 책을 내어준다. 상만은 허구가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 기꺼이 감사히 받아들인다.
허구의 방에서 상만은 허구가 쓴 소설을 발견한다. '여행자 K'라는 서술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허구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 구토 증세를 느끼며 다른 세계로 여행을 하는 주인공은 허구 자신이었다. 자신이 가지 않은 또 다른 세계에서 허구의 삶은 펼쳐지고 있었다. 허구의 몸은 분명히 이곳에 있다. 이따금씩 허구는 스스로의 삶에서 도망친 여행자가 되어 다른 삶을 동시에 산다. 『허구의 삶』은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삶이 허구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나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다른 세계에서도 나는 살아간다. 내가 하지 않은 선택으로 삶을 꾸려 간다. 허구는 일찍 자신의 슬픔과 비밀을 알아버렸다. 이곳에 발붙이지 못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만들어 낸다. 상만 역시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소년 시절을 보낸다. 선택을 할 수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간 앞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야 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선택이 존재하는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 K'는 우리 모두였다.
선택의 다른 이름은 후회다. 선택을 했다고 하지만 후회만을 남기며 살아갈 뿐이다. 허구와 상만이 선택하지 못한 삶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간절히 빌어보는 수밖에. 그곳의 삶에서 나는 제대로 살아가기를. 풍족하게 해주지 못한 어린 시절을 가진 나에게 보내는 소설, 『허구의 삶』. 너는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고 위로해 주는 소설, 『허구의 삶』. 최선이 아니었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서 눈물 난다. 후회만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괜찮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