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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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까. 가까운 이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거나 혼자 삭히거나 그럴까. 대체로 그 고민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난 뒤에 놓고 보면 굉장히 사소한 일일 때가 많다. 섣불리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 말보다는 생각을 오래 해 보는 것. 내가 대충이나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소설을 읽는 것.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펼쳐 놓는 인간사의 시시함이나 쩨쩨함이 소설 안에는 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까지 들어 있는 것이다.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민, 걱정, 불안이 담겨 있다. 그것에 함몰되지 않도록 건강하게 버티는 인물의 씩씩함까지도. 여덟 편의 소설 안에는 사소하지만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해서 남에게는 말하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고민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에게 오랜만에 연락해 오는 직장 동료의 안일하고 무심한 행동. 인스타 중독 회장에게 찍혀서 월급을 포인트로 받는 회사원. 한때 짝사랑했던 동료와 산뜻하게 밤을 보내볼까 하는 궁리를 하는 자뻑에 빠진 남자. 전기세가 밀렸는데 덜컥 강아지를 사 오는 록 가수.

아이를 그랜드 피아노에 비유하며 자신의 삶이 이제 좀 편해졌으면 하는 새댁. 중고 신입으로 첫 정규직 직장에 첫 출근하며 하루 만천 원을 써야 하는데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회사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을 오로라 엽서를 통해 발견하며 우는 직장인. 장류진 소설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현실의 나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세상은 호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자신만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구는 이에게 산뜻한 복수를 해주는 활달한 인물이 『일의 기쁨과 슬픔』에 있다.

치사한 고민에 빠진 소설 속 화자를 대하는 장류진의 방식은 신선하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준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을 비꼬지 않는다. 그가 몰랐다면 가르쳐 주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니겠냐며 다소 능청스럽게 상황을 돌파한다. 결말을 비관적으로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장류진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조롱하거나 우울하게 그리지 않는다. 결혼식에 오지도 않을 거면서 밥만 얻어먹은 동료의 미래를 걱정해 준다. 월급 님이 입장했다는 문자를 받고 비행기 표를 결제한다. 첫 정규직 직장으로 향하는 길에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택시를 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다.

일상의 우울을 산뜻하게 날릴 수 있는 힘이 나는 행동을 하는 인물을 보여주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의 기쁨과 슬픔』 속 인물의 고민을 통해 나를 투영해 본다. 그들이 가진 고민의 크기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대체 누가 월급을 포인트로 주는데 씩씩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집이 성매매 하는 곳으로 알려져 새벽마다 남자들이 누르는 벨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단 말인가. 이력서 넣은 곳마다 서류 심사에서 탈락해 백한 번째 프러포즈도 아니고 백한 번째 이력서를 쓰면서 겪은 수많은 실망과 기대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일의 기쁨과 슬픔』에 실린 소설을 통해 장류진은 괜찮다고 사는 게 그렇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열 명도 되지 않은 직장 동료들 틈에서 그들이 내는 한숨 소리까지도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내일을 기대하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꿈이 없어서가 아닌 꿈이 있어서 슬픈 지금, 여기. 내가 가진 꿈의 크기를 통장 잔고와 똑같이 일하는데도 차이가 나는 연봉의 현실 앞에서 이리 재고 저리 재봐야 할 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일상과 희망을 조율하는지 알고 싶을 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면 아주 큰 힘은 아닌데 미세한 기운이 솟아올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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