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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곽재식 지음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우주에 막막히 혼자 남겨졌다면. 인류는 멸망하고 외계인조차 나타나지 않는다면. 빛의 속도를 뚫고 날아간 우주 한복판에서 외롭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을 당신을 위한 소설. 곽재식의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을 보낸다. 200억 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가 흔적조차 없다고 해도 나는 외롭게 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이 책을 우주선 안에 넣어 발사 시키겠다. 나도 그 안에 타고서 말이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긴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에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자, 뇌이식법으로 과거의 기억을 불충분하게 가지고 있는 자, '지리산 계곡의 맑은 물' 색깔을 구현해야 하는 자, 로봇 반란을 눈치챈 자, 열어 보지 말라는 서류를 가지고 고민하는 자, 우주란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자, 월요일이 오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히 꿈꾸는 자가 등장한다. 한 편 한 편 이야기 안에는 일견 소소해 보이는 인물들의 고민이 등장하지만 깊게 들어가보면 절대로 소소하지 않는 전인류적이고 우주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앞에서 설명한 우주 한복판에서 홀로 떠 있는 '나'의 이야기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이다. 소설 속 상상이 아니라도 우리는 홀로 버려진 기분을 매 순간 느낀다.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로서 그걸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지하철에서 누가 먼저 일어날지를 간파해야 하는 피곤한 출근을 해야 하고 일요일 오후를 보내며 절대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일상적인 소망을 곽재식은 소설로 풀어 낸다. 지하철이라는 섬에 갇히고 월요일이라는 출근 지옥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소설이 있다.
이야기 끝마다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사연이 들어 있다. 주로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라서 이렇게도 소설을 창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왜 아웅다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게 되지는 않는 행위이다. 지구에서 쏘아 올리는 신호를 외계인들은 결코 보지 못할 것이고 가을인데도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 미세먼지의 힘은 강력해서 마음이 내내 가라앉는 것이다.
허무에 빠져서 허우적허우적. 그럼에도 끝이 행복한 소설이 있다면 결말이 사랑스러운 소설이 있다면 피식하고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최후에 남겨질 사람이 나라고 해도 기다림을 이기지 못하고 우주선을 타고 달려온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을 꿈꾸어 보는 것이다.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을 읽으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는데 애매한 대답을 들어도 로봇들이 반란을 시작하는 세계라도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내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