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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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고 뭐고 생각하기 싫을 때가 있다. 글은 써서 뭐하고 안 쓰면 또 뭘 할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든다. 지식을 쌓는 용도로 소설 읽기는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 아직도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다 때려치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안 읽고 안 쓰면 어쩔 건데, 그러면 또 할 말이 없다. 문학에 대해 생각하기 싫다고 했지만 이미 오랫동안 문학은 나의 삶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없으면 안 된다.

사람 만나는 것도 잘 못하고 어울려서 분위기를 휘어잡는 건 더더욱 못한다. 책을 읽는 고요한 시간을 그 어느 시간 보다 사랑한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읽으면 더욱 좋다. 소설아 끝나지 마라. 하면서 읽는다. 어린 시절 겪었던 슬픔과 비참이 날 것 그대로 들어 있는 소설. 공선옥의 소설이 그렇다. 남편 없이 혼자 애를 키우고 장마 때 주인집 남자를 도와주었다가 그대로 물에 휩쓸려 가버린 인생. 별거 중인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말 못 하고 그이가 주는 돈으로 애들 먹일 딸기를 사는 삶.

『명랑한 밤길』에는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있는 그대로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나온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잊고 싶은 그 시절을 불러온다. 전라도 말의 구수한 입말을 살려 소설을 쓰는 공선옥은 인물을 꾸며 내지 않는다. 사연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이웃과 친구, 친척, 가족, 동료의 어제와 오늘을 소설로 가지고 오면서 현실성을 부여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명랑한 밤길』에는 담겨 있다. 오늘 힘들어도 웃어 버리는 하루. 내일을 위해 온기를 남겨두는 시간.

이웃과 가족의 정이 그리워지고 사는 게 내 맘 같지 않을 때 『명랑한 밤길』을 읽기를 추천한다. 너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얄팍한 위로 대신 우리 힘을 내볼까 하는 씩씩함이 있다. 문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물으며 그럼에도 문학을 버리지 못할 때 에너지 음료를 먹듯이 공선옥의 소설을 찾는다. 이리저리 어렵게 서사를 비틀고 멋부리지 않은 담백하고 살아있는 문장으로 쓰인 소설 『명랑한 밤길』을 읽으며 무엇에도 지지 않을 가을의 용기를 얻는다.

돈 180만 원이 없어서 제자에게 못 빌려줘 안타까워하는 사람. 외국인 노동자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명랑한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명랑한 밤길』은 그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공선옥만큼 인간을 따뜻하고 명랑하게 바라보는 작가가 또 있을까. 꼬이지 않고 비틀리지 않는 시선으로 인간애를 그리는 소설가. 그이가 있어서 소설을 읽고 또 써 볼까 하는 허세를 부릴 수 있다.

어렸을 때는 공선옥의 소설이 궁상맞다고 생각했다. 세련이 뭔지도 모르면서 세련되지 않았다고 건방진 마음을 가졌다. 소설이 뭔가. 내가 갖지 못한 세계를 근사하게 포장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소설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면 된다. 오늘 버텼으면 내일도 잘 버틸 것이라는 희망을 조금 보여주는 것. 공선옥의 소설이 내겐 그렇다, 이제는.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고 그때를 다 잊고 지금 잘난 맛에 살았다. 『명랑한 밤길』은 내게도 온 세상의 슬픔이 한꺼번에 찾아온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 됐다. 묵묵한 나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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