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김진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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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급 며느리》를 재미있게 봤다. 명절에 집에 있어서 행복했다는 김진영의 말로 영화는 시작한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평범한 사람 김진영이었다. 잘 웃고 큰 소리로 자기주장을 확실히 말하는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시작은 김치였다. 김진영은 김치를 잘 먹지 않고 남편 선호빈은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그럼에도 김치를 택배로 보내고 손수 가져오기도 했다. 더 이상 김치를 넣을 때가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김진영은 김치통을 마당으로 던졌다.

영화는 2018년에 개봉했다. 남편 선호빈이 영화 후일담처럼 『B급 며느리:난 정말 이상한 여자와 결혼한 걸까?』를 냈고 올해는 아내 김진영이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을 출간했다. 영화에서는 선호빈이 자신을 갈아서 다큐를 찍었다고 말한다. 아내와 엄마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남편은 정신과 상담을 받기까지 한다. 다른 집들도 이렇게 사느냐고. 공평하게 아내와 엄마의 입장을 영화에 담아내는 건 무리이다. 그 영화는 감독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만든 것처럼 보였다.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에는 남편의 아내도 누구의 며느리도 아닌 인간 김진영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들어있다. 영화에서처럼 김진영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다. 전혀 다른 집안의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한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상대의 다른 면이 보인다. 김진영도 말하지만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싸움은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이가 링 위에 오를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집에 있는 이틀 동안 시어머니는 김진영에게 열세 번이 넘게 전화를 걸어온다. 이 무슨 도대체 황당한 일인지.

김치도 김치지만 전화도 문제였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시어머니와 김진영은 일곱 통의 전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주말에는 손자를 보러 오시고 급기야는 손자를 키워주시겠다며 함께 살자고 하셨다. 김진영은 거절을 잘한다고 한다. 상대가 놀랄 정도로 담백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말에 싫다고 했다. 그 뒤부터 둘 사이는 어색해지고 나중에는 서로 보지 말자는 말을 주고 받았다. 보지 않는 동안 김진영은 도서관에도 가고 살림도 하면서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부부들도 나와 호빈처럼 정상성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었고, 많은 여성이 남편들이 제시하는 '다른 여자들'의 인내심에 기가 죽어 있었다.

그 그들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 어른들에게 별나게 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호빈에게 크게 배신감이 들었다. 친구도 별로 없고 지혜로운 조언을 해줄 이도 곁에 없이 육아와 가사로 집안에 고립되어 외롭고 어리둥절한 나에게, 호빈은 상식도 뭣도 아닌 그저 자기 혼자 방편처럼 휘둘러온 처세술을 진실인 양 설파하고 있었던 거였다.
(김진영,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中에서)​

김진영은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나오고 그전보다 달라진 게 있느냐면 바뀐 건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남편과 시어머니는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 대로 살고 있다. 김진영도 마찬가지이다. 타협을 한 건 더더욱 아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보기로 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나는 나의 편이라는 점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너는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누가 등 떠밀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이다. 싸움과 전쟁의 단계를 거쳐 김진영과 선호빈은 논쟁이라는 타협점을 찾았다. 아들 선해준이 엄마, 아빠 싸우는 거야?라고 물으면 아니 논쟁하는 거야 말하며 결혼이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은 여자, 아내, 딸, 엄마, 며느리라는 정체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찾아가는 김진영의 기록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누구를 악의 축으로 그리고 잘못을 가려내어 편을 만들지 않는다.

아무런 역할도 없이 여자 사람으로서만 살고 있는 내가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듯이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의 가치를 인정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틀리고 나쁜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특이하고 예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세계에서 나를 지켜내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슬기로운 김진영은 경쾌하고 발랄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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