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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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풀다가 결별이라는 말의 뜻을 물어왔다. 잠깐 멍해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별이야.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거. 만났다가 헤어지잖아. 실없는 농담을 곁들였다.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았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함. 또는 그런 이별이라는 뜻을 가진 그 단어를 입안에 넣고 굴려 보았다. 누군가와는 기약 없는 이별을 했고 한 상태이기도 한 어정쩡한 시간이다. 바람은 어제보다 오늘이 차게 불어오고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그 바람에 대해서도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염승숙의 단편 「충분히 근사해」를 읽으면서 결별, 바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같은 단어가 수시로 떠올랐다. 대학교에서 만났던 친구 조를 잃은 '나'의 감정에 한없이 침잠해 들어갔다. 한 사람을 만나 그와 함께한 시간이 있다는 건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다. 이를테면 그날의 대기 상태에 따른 날씨의 기분을 공유하고 두서없이 나누었던 대화의 조각을 떠올리는 일 같은 것. 그와 함께한 시절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하게 떠올려지는 기억 때문에 우는 순간 같은 것. 아름다울 수 없는 것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간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꺼이 감동한다.

'나'는 카드 만드는 회사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일한다. 함께 일한다고 쓸 수 없는 건 그들은 같은 공간을 쓰고 있을 뿐이지 홀로 혹은 따로 일하는 것처럼 유대가 없기 때문이다. 치마를 입었는지 바지를 입었는지만 관심 있어 하는 동료가 있고 따위, 나부랭이, 하여간 여자들이란이라는 말을 수시로 달고 사는 상사가 있다. 당장의 생계가 아니라면 차라리 결별하고 싶을 정도의 감정밖에 없는 사람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오래전 조와 함께 영화를 찍을 뻔했던 연극배우를 만나러 간다.

조가 죽은 줄 모르고 문자로 안부를 물어온 사람이었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가지지 못했던 그의 추억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남은 생을 근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조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충분히 근사하지 않은 세계에 살면서 근사한 생으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든 내일에 대한 낙관과 기대로 삶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균열은 미세하게 시작되고 결말은 파괴였다.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은, 남겨진 이가 나아가야 할 힘이란 대체 무엇일까를 「충분히 근사해」는 물어온다.

조각난 대화 속에서 겨우 건진 단어나 말의 분위기 일 수도 있고 일상을 버텨가다 안부가 궁금해 물어온 이와 바람이 부는 것을 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떤 날의 분위기와 냄새가 떠오르면서 의미 없이 나누던 이야기를 순식간에 떠올리며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람을 볼 수 있는 건 흔들리는 순간을 목격할 때뿐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안간힘을 우리는 본다. 죽은 이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늘 곁에 있음을 우리 마음의 흔들림으로 머뭇거림으로 슬픔으로 찾아오는 기억과 때론 환희의 순간으로 인지한다.

기약 없는 이별을 감행하고 있지만 우리의 생도 조만간 기약 없음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에 머무는 순간까지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루한 지금의 시간도 충분히 근사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리움은 슬픔이 아니고 아름다움은 기억이 될 수 있는 남겨짐이 된다면 충분히 근사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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