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월호 참사 5주기에 나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사 놓고 바로 읽지 못했다. 또 한 번의 봄이 왔는데도 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었다. 어떤 이의 시간은 그날로 멈추어 있었고 그럼에도 꾸준한 시간에 밀려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데 그 살아야 함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다시 촛불이다. 시간과 거리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그곳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멀리서 응원하고 온기를 불어 넣어준다.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이 마음은 그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불이 꺼진 자리에 촛불이 하나 둘 켜졌고 시위대의 맨 앞에 노란 옷을 입은 그들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생존 가족의 육성 기록을 담은 책이다. 5년여의 시간이 담겨 있다. 예쁜 옷을 차려 입고 기대에 들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전원 구조라는 말로 안심 시키더니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거짓과 왜곡이 있었다. 대대적인 수색. 몇 백이 넘는 잠수사들의 투입이라는 말로 우리를 속였다. 현장에 있던 가족들이 어렵게 배를 빌려 바다로 갔지만 어둠뿐이었다. 절망과 분노, 통곡이 흘러나왔다.

아이가 떠난 방에 새 가구를 사서 들여놓았다는 엄마. 아이가 한 번이라도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편이 안돼 외식 한 번 못하다가 4000원짜리 해장국을 먹으며 좋아했다는 아이. 그게 미안한 아빠. 광화문에서 전경과 싸우다가 아들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전경을 만났다는 엄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다쳐요, 다쳐요 했다면서 우는 엄마. 시위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그걸 하고 있다면서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랐을 세상이라고 말하는 아빠.

이제는 돈 불리고 집 사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래를 기약하는 것보다 오늘 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미래라고 말하며 엄마를 위로하는 형제자매. 아이가 물에서 올라왔는데 차마 그 아이 언니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고 했다. 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 자체가 죄처럼 느껴졌다.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있다가 웃고 있으면 자식 죽었는데 웃고 있다고 웃음이 나오냐는 말을 듣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해서 처음에는 놀랐는데 이제는 되받아 칠 수 있다고 한다.

책에는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생존 가족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도 했고 생명안전공원 건립 반대 현수막을 보지 못해 길을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유가족이나 생존 가족이나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생존 가족은 분명히 피해자인데 그 위치가 어정쩡해서 유가족들한테 다가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가족분들이 오히려 먼저 오셔서 우리 아이 안부를 물어요. "애는 어때요, 잘 있어요?" "네, 잘 있어요. 아직은 힘들어해요." 그러면 제 손을 잡고 잘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주고. 그런 온기를 받아요. 추운 곳에 있지만 서로 부둥켜안고 있으면 체온이 유지되는 것처럼.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고통의 단어 사전」으로 시작한다. 자음에 맞추어 ㄱ부터 시작되는 단어의 이야기는 읽기가 힘들었다. 이런 단어 사전이 나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한마디를 해달라고 했다. 아빠는 욕 안 먹는 아빠가 되도록 열심히 살 테니 아빠 꿈에 자주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한마디를 끝냈다. 아빠, 엄마를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했을 작가들의 심정도 이러했겠지. 글로 읽는 나도 이렇게 슬프고 참담한데. 그들이야 오죽했을까. 어떻게 말로 기록으로 전할 수 있을까. 부모들이 살아온 세월을.

세월호의 장소를 찾아가는 2장 「세월호의 지도」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참사가 일어나고 가족들이 가야 했을 고통의 장소의 기억이 있다. 엄기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닫는다. '빛에서 어둠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이 겪어야 할 비극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 의해 벌어진 참사로써 바라보며 동시대인으로 살아야 한다. 4월 16일이라는 시간 이후의 우리의 삶은.

어둠이 내리면 창문에 불이 들어온다. 아직 불을 켜지 못한 창문 앞으로 다가간다. 가만히 문을 두드린다. 여기 당신의 오늘을 궁금해하는 이가 있음을 알리려고.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당신들의 고통이 아닌 우리들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겠다. 진실을 찾아가는 그 길에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동시대인들이 아니었던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정의와 평등, 진실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엄마, 아빠가 우리 곁에 있다. 어둠이 내리면 창문에 불을 켜는 건 우리여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