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삼시세끼 산촌편>을 틀어 놓고 멍하니 보곤 한다. 텔레비전 속 그들이 어떤 음식을 해 먹나. 오늘은 또 어떤 음식을 손이 큰 그들이 많이 하려나. 일종의 대리 만족. 우리 집에는 가마솥도 없고 음식을 휘저을 큰 국자도 없으니. 매번 그들이 푸짐하게 하는 음식을 보며 기뻐하는 것이다. 양 조절을 못해서 며칠 동안 김치찌개만을 먹어야 했던 적도 있어서. 그들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는 확인을 받는다.

늦은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는 먹방을 보곤 한다. 몇 명의 유튜버들을 정해 놓고 오늘은 어떤 걸 먹었나. 올라온 방송을 보며. 양의 많음에. 그걸 또 다 먹는 위대함에. 놀라며 빈 뱃속을 달래며 잠이 든다. 유튜브 방송의 특성상 내가 보는 방송이 있으면 그것과 비슷한 채널이 추천으로 뜬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듯한 브이로그도 보고. 시골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정겨운 방송도 보고. 먹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먹는 방송을 보니. 시간은 안 갈 듯하면서도 잘도 간다.

권여선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는 활자로써 오감을 자극한다. 그중에 눈으로 읽고 상상하며 결국엔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이 여러 종류가 있었다. 맛깔스러운 음식의 묘사와 음식에 담긴 추억까지. 먹지 않아도 배부른 건 아니지만 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막내딸로 태어나서 간을 보는 절대 미각을 가진 간순이의 일화부터 육식, 특히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가 술김에 순대를 먹기까지. 좋아하는 소설가의 음식 추억담과 생활의 모습까지 읽으며 행복했다. 그가 겪었던 시간에 나의 과거를 겹쳐 보는 것이다.

음식에 관한한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그의 자랑까지. 읽고 있으면 우리를 따뜻한 만두가 놓이고 김밥이 있고 혀가 얼얼한 정도의 땡초를 넣은 깡장에 호박잎 쌈 앞으로 데리고 간다. 가장 좋았던 글은 명절날 차례도 안 지내고 함께 모이지도 않는 집안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며 자신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담은 「콩가루의 명절상」이었다. 연휴 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작은언니와 술안주에 최적화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다 먹으면 치킨까지 시켜서 먹는단다. 또래의 여성들이 콩가루인 자신을 부러워도 한단다.

질보다 양을 따지는 미식보다는 주로 폭식을 즐기는 나로서는 『오늘 뭐 먹지?』에 실린 음식이 놀랍기만 하다. 국물을 내기 위해 좋은 멸치를 사서 냉동실에 정리해 놓고 반건조 생선도 미리 사서 넣어 놓는다. 젓갈을 담가 먹기도 하고 아삭한 오이지를 먹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오이를 짠다. 말린 무청을 사서 삶고 줄기를 벗기고 깨끗이 씻어 냉동실에 얼린다. 일 년치 먹을 시래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음식은 간단하게 먹고자 한다면 한없이 간단해질 수 있고 정성을 다하자면 끝이 없는 세계이다.

『오늘 뭐 먹지?』를 읽는데 시간이 순식간에 가버렸다. 너무 몰입해서 읽은 걸까. 간짜장에 담긴 일화를 끝으로 끝. 아쉬워서 다음 이야기는 없나 정말 이게 끝인 건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삶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먹고살자고 하는 거다. 천 년만 년 살 것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보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먹고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것. 먹다가 가끔 어린 시절이나 기억 속 묻어 두었던 과거로 소환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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