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정전이 된 밤에 『일주일』을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북 리더기의 배터리를 확인했다. 80%. 이 정도는 괜찮다. 밤을 보내기에는. 토요일 밤이었다. 일요일이라는 기대로 배달 음식을 시켰을 텐데. 갑자기 불이 꺼진 황당함과 그럼에도 배달 오토바이는 달려오고. 사람들은 걸어 내려와 음식을 받아 가고 핸드폰의 손전등 앱으로 불을 밝히고 먹었을까. 언제 불이 들어올까를 생각하며 먹었을테지.
『일주일』에는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까지 이어지는 두 남녀가 나온다.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직업을 바꾼 남자, 진유철. 소설가로 살아가는, 하도연. 터키에서 만난 그들은 신분, 나이, 결혼 여부를 묻지 않은 채 일주일을 보낸다. 첫 만남 때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쓰인 그들은 유철의 공세로 사랑을 나눈다. 유철이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소설 구상차 온 도연은 잠시 더 머문다.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만남에 대한 기약이나 기대를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었다. 생각이 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고 가끔 생각만 나는 정도였다. 도연이 K 시의 도서관 행사에 초대되어 그곳으로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해의 책으로 뽑혀 도연은 편집자와 함께 K 시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그가 있었다. 이 년 전에 터키에서 만났던 그가. 양복을 입고 가슴에는 국회의원 배지를 단 채.
사랑은 단순하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보는 것. 『일주일』에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들이 나온다. 유철과 하연이 보낸 일주일은 시간을 건너 뛰어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다시 만난 두 남녀는 그때 못다 한 사랑의 인연을 이어간다. 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파격을 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주일 이후의 시간을 연장한다.
책의 중반쯤 읽어갈 때 불이 들어왔다. 새벽의 시간. 순한 사람들만 사는 것일까. 불이 켜진 줄도 모른 채 잠이 든 것일까. 불빛은 띄엄띄엄 켜져 있을 뿐이었다. 잠시 실망했다가 다시 기뻐하는 순간에 소설을 읽는다. 아침 일찍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전이 된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하는 방송. 『일주일』에는 다른 사랑의 형태도 나온다. 자신만의 방법이 신념처럼 굳어져 타인에게 상처를 가하는. 불이 들어왔다가 꺼지는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정전과 같은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고 사랑을 무기로 상대를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삶과 사랑의 솔직함을 『일주일』은 말한다.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거짓을 이기는 힘은 사랑이라고. 그들의 시간이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 그럴 수 있는 한 계속되기를 바라며 다시 밝아진 냉장고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