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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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둘 이상 모이는 곳이라면 잘 가지 않으려고 한다. 일할 때는 어쩔 수 없으니까. 꿋꿋이 나가서 버티다가 돌아온다. 다른 사적 모임을 만들지 않고 가입하지 않고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지 않는다. 일상을 견고하게 다지는 편은 아니지만 어쩐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보이지 않던 일상이 훌쩍 나타나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기억나는 혹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이 잔존하는 모종의 일들이 있었다. 선의는 악의로. 친밀함은 영악함으로. 의도하지 않은 다른 마음이 끼어들었다.

임솔아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는 그런 마음이 있다. 둘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생기는 변질된 마음이. 오해하고 왜곡하는 타인의 말이 이 삶을 이토록 쓸쓸하게 만든다. 임솔아가 펼쳐 보이는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대체 이 사회는 왜 이렇게 못되고 심술 맞을까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는 아이가 일하는 곳에서 사고를 내서 책임을 져야 할 때 어른의 목소리는 없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정신 질환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가혹함이 있을 뿐이다(「병원」).

자신을 보러 오다가 죽은 친구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른들은 친절하게 먼저 일러준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줄 게 있어」). 원룸텔에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은 무리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다시 하자고」). 문단 내 성폭력의 목소리가 나올 때 쓰인 「추앙」은 무참한 시간의 기록이다. 같잖은 것들이 시를 쓴다고 문학을 한다고 선생질을 한다. 시적인 것의 허용이라고 말하며 성추행을 하고 고발을 하자 오히려 피해자인 척 굴었다. 문학 안에 문학이 있단 말인가.

임솔아의 세계에는 해결되지 못한 빚과 병원비가 쌓여 있다. 여행지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을 돌보며 돈의 계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이고(「신체 적출물」) 애플망고를 들었다 놓았다 하자 그냥 먹으라고 말하는 일상의 여유가 사라지지 않은 세계이다(「눈과 사람과 눈사람」). 그들이 처한 처지를 소외라고 단정 지으며 말하면 좋을까. 그들은 분명 소외되어 있다. 가족과 친구와 다정한 목소리로부터.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 담긴 여덟 편의 소설의 결말은 대부분은 내일이 없는 상태로 끝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임솔아는 묻는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정상도 비정상도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여권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만료 기한이 지나 어디로도 출국할 수 없는 상태의 여권. 기한을 늘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에는 돈이 없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딜 나이에 병원비를 내기 위해 정신 질환이 있음을 입증받는 아이에게 내일은 도착해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이 두려운 시대.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피해의 증언을 가로막는 시대.

소설과 소설가를 거리두기하며 냉철한 눈으로 이야기를 읽어내야 하지만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거쳐온 시간이 이곳에 담겨 있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발가락처럼 부풀고 혈관이 튀어나온 끔찍한 상태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겪었던 곳에서 나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인 삶은 없다. 최선을 살지만 소외의 삶으로 기억되는 삶이 있다. 사람이 싫었을 수도 있지만 임솔아의 인물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내일이 없다고 해도 그들은 없는 내일을 꿋꿋하게 찾아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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