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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내 마음과 분노와 고독을 누가 알까. 나라는 사람의 과거를 누가 알고 싶어 할까.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는 할까. 모든 의문과 가정을 말하자면 긴 시간,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묻고 질문하고 다시 묻는 행위를 거듭해야 한다. 아침에는 우울했다가 조금 누워 있으면 힘이 나서 움직인다. 많이 움직인 것 같은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침울해진다. 할 말이 없을 땐 시간 참 빨리 가네요,라고 말해보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맞는 말이어서 다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럴 때면 좋아하는 것과 일을 떠올린다. 노란색, 순살 치킨, 밤에 듣는 음악, 새로 산 필기도구 그리고 소설. 소설을 읽어야지.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싶을 땐 소설을 읽는다. 우울하고 침울하고. 불안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김금희를 읽으면 괜찮아진다. 김금희가 써 내는 소설. 그래서 김금희 같은 소설을.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사라질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 안녕한 하루 대신 안녕할 내일을 갖고 싶을 때.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실린 소설을 읽으며 세계가 내게 건네는 쓸쓸함을 받아들인다.
김금희의 문장은 위태롭게 이어지는 듯하다가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간결함을 버리고 복잡함을 선택한 그의 문장에서 인물이 느끼는 외로운 처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지구 끝까지 이어질 것 같은 문장을 읽으며 허구의 세계에 고독하게 갇힌 인물과 이곳의 나를 동일시해본다. 같구나. 우리의 처지는 왜 이렇게 비슷할까. 그가 소설의 배경으로 가져온 시대는 멀지 않아서 가깝고 가까워서 먼 것처럼 느껴진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의 기이한 행태를 마음 아파하고 냉정한 고용주와 친해지고 싶어 사랑을 파는 주인공.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의 비루함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배경색을 너무 잘 알아 쉽게 다음 장을 넘길 수 없는 머뭇거림.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에서 택시비를 받은 은수가 택시는 타지 않고 그 돈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타는 장면.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챙겨 놓은 과일을 몰래 가지고 나가야 하는 「쇼퍼, 미스터리, 픽션」의 '나'가 느껴야 하는 불안.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서 유독 마음이 쓰인 장면들은 그런 것이었다. 돈이 전부가 아님에도 돈이 전부인 것처럼 구는 세상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안간힘. 「레이디」는 그 시절 누구나 느꼈을 친구와의 우정을 넘은 애정의 주변을 더듬는다. 우린 전부 어렸고 미숙했고 나약한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김금희의 소설은 괜한 문학적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추상보다는 구체의 단어로 문장을 쓰면서 낯선 이야기가 아닌 누구라도 한 번은 살았을 시절을 쓴다.
아홉 편의 소설에 담긴 마음에 대해 생각하느라 하루치의 우울을 잠시 숨겨 둘 수 있었다.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고독하다. 소심해서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는 겨우 억울한 마음을 눌러가며 사는 사람들이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반말로 이야기하는 저자.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도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습작생. 택시비가 얼마인지를 끝끝내 따져 묻는 선배, 그러고서는 주지 않는. 대리 기사에게 팁 대신 목사님이나 할 것 같은 거룩한 말씀을 남기는 시집 식구.
김금희는 쩨쩨하고 뒤끝이 작렬인 누가 봐도 관종인 것 같은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들을 바라보는 화자는 대체로 착하고 소심하고 약간은 깐깐하다. 품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세상에게 선의의 복수를 할 줄도 아는. 영리한 것 같은데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은 빠져 있다. 유머가 세상을 구원하면서 나도 구원하게 만든다는 것도 안다. 나의 마음이 이토록 우울해서 내일이라는 미래 시제가 쓰이지 않을 것 같은데도 김금희를 읽으면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조금 더 힘을 내자. 힘이라는 게 낸다고 해서 나는 건 아니지만 힘을 내자고 말하면 혹시 없던 힘도 생길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을 해보라고 말하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돈보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은 소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돈이 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묻는 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서 미래라는 시간의 가능성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