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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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알아보러 다니다 보면 정말 별별 집들을 다 만난다. 남향 집이라고 하는데 햇빛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모를 집. 바닥과 장판이 엉망인 건 기본이고 화장실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는 집. 창문을 열면 지나다니는 행인과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제 친밀감이 생기는 집. 그러면서 어마 무시한 집값 밖에 자랑할 게 없는 집. 이건 뭥미 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근생이라. 배지영의 소설집 『근린생활자』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 「근린생활자」에 나오는 근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 보았다. 나 역시 소설의 주인공 상욱처럼 근생이 뭔데요, 물어봐야 했다. 소설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근생은 근린생활시설의 줄임말이다. 상가용으로 허가를 받아서 지어 놓고 주거용으로 바꾼 집을 의미한다. 원래 주거용으로 만들려면 주차장의 면적이 넓어야 한다.

상가용이라고 하면 주차장 면적을 줄일 수 있어서 꼼수를 쓰는 것이다. 같은 건물 안에 근린생활 가구가 있고 주거 생활 가구가 섞여 있는 것이다. 근린생활자, 즉 근생으로 살려면 자동차가 없어야 하고 층간 소음을 내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주로 같은 건물 안에 사는 주거 생활자가 구청에 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어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운다.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 이런 주거 형태로 집을 짓는다. 되도록이면 근생 주거는 피해야 한다. 상가용으로 허가가 난 시설이므로 취득세와 각종 세금이 주거용 시설 보다 비싸다. 재수가 없어 신고가 들어가면 보일러와 싱크대, 화장실을 철거해야 하고 집에서 나갈 때까지 강제 이행금을 내야 한다. 그럼에도 소설의 주인공인 상욱처럼 근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근생을 사는 이유는 집값이 다른 곳에 비해 싸기 때문이다. 상욱은 인생 처음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돈을 끌어모아 근생으로 살아간다. 이자를 내기 위해 자신이 집주인임을 숨기고 친구와 함께 산다. 상욱은 탈 없이 근린생활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근린생활자』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다. 비정규직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 태극기 부대 출신인 학교 등교 지도 도우미. 특수 트럭을 몰고 전국 산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묻는 정직원. 도수관에 붙은 삿갓 조개를 없애는 관리인. 도벽과 매춘으로 살아가는 여인들. 가전제품 연구원에서 청소기 판매직으로 밀려난 사람.

그들의 이야기를 배지영은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실제 작가가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들었던 근생은 리얼 하이퍼 내 집 장만 모험기로 변신한다. 태극기 부대에서 활약했던 노인이 갑자기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진보라는 세계를 접한다. 이 또한 소설적인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뀐다. 큰 죄를 가리기 위해 작은 죄를 드러내는 이곳의 세계는 상징으로 읽히면서 쓸쓸해진다.

왜 비정규직이 됐어? 왜 근생 빌라에 살아? 물을 수 있다. 물었지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오래 고민해도 들려줄 수 있는 속 시원한 대답은 없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어서. 오늘 먹고 내일 살기 위해서. 밖에서 잠을 잘 순 없으니까. 『근린생활자』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의 현재에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살아서 그런 내일이 되었다는 소설.

미래에 대한 낙관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같은 입주민이면서 주거용에 사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근린생활자의 삶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정규직의 길은 요원하고 빚을 내면서 집을 마련했지만 한순간도 편할 때가 없었던 상욱이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지하에 내려가 삿갓 조개를 긁어내야 하는 관리인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흔적을 전달하며 우는 청소기 판매원.

소설은 멀리 있을 것만 같은 사연과 기억을 이곳에 부려 놓는다. 한 편 한 편이 소중했다. 현실의 기반으로 한 소설을 좋아한다. 배지영의 『근린생활자』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소설이다. 미생에 이어 이제는 근생이다. 소설은 현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근생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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