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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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숙의 장편 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짧게 끊어 쓴 문장에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마음에는 불안과 고독, 실패와 좌절에 깃든 절망이 있었다. 소설은 내내 어두웠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그 어두움이 빛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이 세계는 어쩔 수 없는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희망이나 내일에 대한 낙관을 기대했나. 망설임과 머뭇거림의 문장으로 채워진 소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추와 약, 제이, 케이, 에이, 브이라고 명명되는 인물은 일을 하지 않으면 햄이 되어 버리는 세계에 살고 있다. 아니 놓여 있다고 해야 맞다. 그들은 산다고 하는 것보다 우연히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안개로 덮인 도시에서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 굴레에 갇혀 있다. 햄이 되어 버린다. 햄.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햄이 되고 다시 일을 하면 햄의 상태에서 벗어 난다. 추는 햄이 되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가혹한 일.

대학교를 다니다 휴학을 하며 일을 하는 추는 아무리 일을 해도 등록금을 마련할 수가 없다. 어디를 가도 감시와 무시를 일삼는 관리자가 있었다.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으로 몰리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던 추의 아버지가 임금 체불에 항의해 불을 지르고 감옥에 간다. 추는 아버지가 불을 지른 곳 맞은편에 다시 세워진 맥도날드에서 일을 한다. 햄이 되지 않기 위해.

대학교 선배 약이 찾아오고 추는 그를 따라가 새로운 일을 한다. 도박장을 지키는 홀맨으로. 도박꾼들의 화풀이 상대로서 맞고 또 맞는 일. 염승숙이 그리는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폭력과 멸시, 학대로서 자신을 지키는 인물들이 나온다. 대충 살라고 말하는 어른이 있었지만 그이의 말을 듣다가는 햄이 되어 버리는 세계.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던가. 세계는 지속적으로 노동을 강요하지만 우리가 언제 일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이제 세계는 자신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이해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이해되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햄이 되거나 되지 않는 것도 이해 가능한 범위에 있는 건 아니다. 이해와 몰이해 사이에는 아무런 생의 법칙도 없는 것이다. 이해하든 못하든 누군가는 햄이 되고 누군가는 햄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일을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부리고 누군가는 노동한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맞지 않는다. 경악스러운 것은 단지 그뿐이다.
(염승숙, 『여기에 없도록 하자』中에서)

이해 가능한 여기에 있지 않다.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안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해하고 안다는 것의 오류를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지적한다. 존재의 이유를 납득한 적도 없으면서 살아가는 당신과 나였다. 무엇이 되거나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일을 할 뿐이었다. 문장의 종결 표현과 실제 기능은 다르다. '여기에 없도록 하자'라는 문장은 청유형으로서 우리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는 여기에 없어야 한다는 단정과 명령의 기능을 담고 있다.

여기가 아닌 저기. 인간을 인간처럼 보지 않는 여기가 아닌 고통에 호응할 수 있고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이들이 있는 저기,에 우리는 가닿아야 한다. 슬프고 참혹한 이야기. 자신을 끝내 고통과 상처의 시간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여기에 버려진 이들을 위한 노래. 우리는 모두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한 선택을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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