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 짧아도 괜찮아 5
박생강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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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 동화 읽는 것을 좋아했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나 혹 부리 영감 같은 소소한 권선징악이 담긴 동화를. 동화책으로도 읽고 테이프로도 듣고 나중에는 동화를 극화한 만화로도 보았다. 그것들을 읽으며 착하게 살아야지 까지는 아니지만 남에게 해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린 마음에 세상엔 신기한 일이 자꾸 일어나고 흥미롭고 이상한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전래 동화 책을 읽으며 글자를 깨우치기도 했다. 동화의 글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박생강의 기담 집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에는 현대판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지만 2190년에 읽힐 것 같은 2019년의 이야기가. 열여섯 편의 이야기는 이상하고 야릇하고 이게 뭐지 하는 기분으로 읽힌다. 헤어진 연인을 잊고 싶어 치킨 뼈를 모아 귀신을 부르기도 하고 영혼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는 주술을 부리기도 한다. 외계인의 이빨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의 이야기. 웃음 전염병이 발생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각각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하나의 주제로 모인다. 세상은 정말 이상하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싫다는 것. 지구가 아닌 화성에라도 가야 숨 막히는 현실을 잊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그럴듯하게 인정된다는 것. 소설가가 꾸는 꿈이란 기껏해야 꿈에서도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는 슬프고 허무하다. 좀 더 버틸 것을 바라지만 현실은 오늘 쓰려질지 내일 쓰러질지 모를 정도로 팍팍하다. 기담 집이라고 칭했지만 현실은 더 기이하고 괴이해서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은 소소한 유머집처럼 느낄 정도이다.

전래 동화와 다른 점은 소설에 쓰인 소재가 2019년의 문화 지도를 그릴 정도로 자세하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곶감이나 종, 구렁이, 처녀 귀신 대신 치킨, 맥주, <미스터 버티고>라는 진짜 있는 서점의 이름을 쓰면서 이야기를 가깝게 느끼게 해준다. 나이만 먹은 어른이는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을 읽고 그런가, 내게 일어난 일의 배후에는 우주 어딘가에서 신호를 보내는 외계인 때문에 혹은 화성에서 날아온 바이러스가 유입되어 그런 것인가 하는 누가 들으면 묘한 표정을 지을 정도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원래 전래 동화는 깊은 밤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실 알고 보면 아이들을 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구전되어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꾸는 꿈에는 호랑이가 귀신이 욕심 많은 혹부리 영감이 나오겠지만 아이들은 온기를 느끼며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을 읽고 나면 마음을 얼리고 다시 녹이는 일에는 차가운 귀신과 뜨거운 귀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2019년의 상상이 추가된다.

우리는 지구인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우주 머나먼 별에서 파견되어 실험적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래 동화는 우리의 기원을 완벽한 서사로 위장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사실. 소설은 100년 후의 우리를 기약하려고 하지만 지구라는 별은 이제 쓸모와 책임이 사라져 가고 있다.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은 100년 후에 도착할 인류에게 던지는 희미했던 우리들의 서사가 담긴 책이다. 사라진 우리를 읽으며 낄낄대고 안타까워하고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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