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여름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다. 그의 소설에 담긴 이야기와 인물들 때문에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힌 이들이 들려주는 낮은 이야기. 무더운 여름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마음이 축축 처질 때 그의 짠한 소설에서 힘을 내야 한다는 위로를 받아든다. 소설 『영란』은 주인공 '나'의 진짜 이름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진짜 이름이든 가짜 이름이든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할까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 나들이 중 잠깐 산을 올랐을 때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여름철 익사 사고로 신문에 난 그 사고로 '나'의 삶은 무너져 버린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남편 역시 얼마 후에 사고로 죽어 버렸다. 순식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나는 이후의 삶에서 비켜날 수 없는 시간에 처한다. 막걸리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죽음은 대체 왜 급작스럽고 난데없는가.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만난 남자는 광화문 추모 분향소로 나오라고 한다.

정섭은 자기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딸과 부인이 독일로 떠났고 자신의 잘못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는 일이 삶의 숙제로 남았다. 어느 날 전화가 온다. "한상준이 돈을 안 주고 죽어버렸잖아요." 과격하게 누군가의 죽음을 전하는 말. 그는 전화 속 상대를 추모 분향소에서 만난다. 만나고 놀란다. 삶의 다른 쪽을 바라보는 눈. 말이 되어 나왔지만 말이 되지 않은 말을 하는 여자를 쓰레기 집에 두고 갈 수가 없다. 그날 즉흥적으로 목포로 가는 기차에 두 사람이 오르고 삶은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어 갔다.

『영란』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허둥대는 사람들. 그들은 목포라는 항구 도시에 살고 그리로 모인다. 서로를 징하게 짠해하고 모르는 이라도 상에 앉혀 밥을 먹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억울한 죽음도 원치 않는 이별도 바다로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고 또 돌아오는 삶이 있는 곳에서 '나'는 비로소 이름 하나를 얻는다.

남편과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묵었던 곳이 '영란여관'이었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나'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살자. 살아보자. '나'에게 영란이라는 이름을 주고 살뜰히 보살펴 주는 그들과 평생을 살아도 될 것 같았다. 목포는 항구다고 했지만 『영란』 속 목포는 이별이다. 아니 목포는 만남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나오지만 그곳이 목포가 아니어도 좋다. 사람과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 이별과 만남, 이야기가 있다. 삶은 애도의 연속임을 잊지 않는다.

소설은 삶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그럼에도 사랑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의 다음 만남을 예고하며 끝을 맺는다. 부디 그들이 서로를 애틋해하며 살아가기를. 상처를 잊기보다 살아가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겨두길. 유행가의 한 소절 같기도 신파극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소설이 가슴을 울린다. 그러니 살아보자는 말을 소리 내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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