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소설의 첫 만남 13
정세랑 지음, 최영훈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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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60킬로를 넘은 소년. 아버지는 중독 때문에 죽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중독 때문에 집을 나갔다. 할머니 손에 키워진 소년은 제 덩치를 숨기고 살 수도 없어 늘 주눅이 든 채 살아간다. 그러다 씨름부가 유명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정세랑의 소설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의 내용이다. 당신은 일생일대의 기회란 것을 믿는 편인가. 어른들은 말씀하셨지. 사람에게는 살면서 총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어른의 말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진짜 기회가 있긴 한 건가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는 몸집이 큰 소년이 세상과 마주하는 이야기이다.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의 한 권이다. 소설 안에는 삽화와 만화가 절묘하게 실려 있다. 책 읽기에 거부감이 있는 아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소년은 프로 씨름 선수가 되기에는 한 끗이 모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주유소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몸이 야윈 점장을 만나 새로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다.

세상에 기댈 곳이라곤 뼈가 튼튼하다고 자부하는 할머니 한 명이었다. 할머니마저도 천천히 늙어가고 있었다. 주유소 점장은 소년을 데리고 다니며 비싼 음식을 사주고 골프 연습장에 가서 골프를 배우게도 한다. 이런 호의는 과연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소년은 자신이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그런 의문조차도 하지 못한다. 사주는 밥을 먹고 재능이 있다는 골프를 치면서 몸을 키울 뿐이다.

그러다 점장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이상하고 야릇한.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소년의 인생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완전히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까짓것. 그냥 한 번 해보지. 믿거나 말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과연 소년이 점장에게 받은 제안은 무엇일까. 비 오는 어느 밤 소년이 마주한 존재의 정체는 이 세상의 것일까.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는 기회와 능력이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한 판 뒤집기 같은 소설이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곰팡이 피는 집을 벗어날 수 없다면 이상한 제안이라도 받아들이면 어떤가.

소년이 믿어야 할 것은 아주 오래된 전설, 기담밖에 없었다. 소년은 믿는다. 그리고 행한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던 신경질을 부려보는 것이다.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포착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켜야 할 신념을 정세랑은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세랑스러운 소설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을 읽으며 소설을 왜 꼭 읽어야 하는지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한다. 어른 또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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