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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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연작 소설 『산 자들』이 나오자마자 바로 사서 읽었다. 열 편의 소설 안에는 전에 읽었던 소설이 몇 편 들어 있기도 했다. 「알바생 자르기」는 세어보니 세 번 읽었다. 그제서야 혜미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산 자들』은 총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자르기. 2부는 싸우기. 3부는 버티기. 가만히 읽어보면 서글픈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시대에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산 자들』을 읽어보라고 말하겠다.

『산 자들』에는 알바생, 대기발령자, 해고자, 자영업자, 철거민, 취업 준비생, 노동자, 음악가, 학생들이 나온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소설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 위기가 몰아닥치고 신차의 인기가 떨어지자 중국이 회사를 인수하는 작업을 했다. 노조는 중국인들이 기업을 경영할 능력이 없고 기술을 빼돌릴 것이라고 했지만 경영진은 이를 듣지 않았다. 이상한 산수의 방식이 도입되고 해고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해고자 명단에 오른 자들은 '죽은 자'가 되었고 오르지 않은 이들은 '산 자'가 되어 싸움을 시작한다.

모두 같이 살 수는 없습니까를 묻는 지루한 싸움이. 『산 자들』을 읽으며 재건축과 재개발을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 그래도 소설을 읽으며 알게 되니 다행으로 여긴다. 소설아, 고맙다. 그리고 힘내라).

동네를 새로 지을 때 땅을 깊이 파내면 재개발이다. 재개발을 할 때에는 세 들어 살던 사람에게도 이사비를 줘야 한다. 동네를 새로 지을 때 땅을 깊이 파내지 않으면 재건축이다. 재건축을 할 때에는 세 들어 살던 사람에게 이사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 아니, 주지 말아야 한다. 주지 않아도 될 돈을 멋대로 주는 것은 주인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므로.
(장강명, 『산 자들』, 「사람 사는 집」中에서)

선녀는 이게 말이 돼요?라고 수차례 물으며 철거민조합에 가입해 시위에 참여한다. 선녀의 그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웃기죠, 그런데 법이 그래요."라고 간단히 대꾸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차이점을 몰라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는 곳에서 쫓겨나는데 어떤 이들은 투기와 투자라는 바람을 몰고 와서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는다. 동네에는 빵집이 많다. 신호등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프랜차이즈 빵집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장사가 될까. 「현수동 빵집 삼국지」를 읽으며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버티기의 안에 있는 「모두, 친절하다」가 가장 인상에 남는 소설이었다. 그 안에는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야 하는가를 물어온다. 어느 하루를 가볍게 그리면서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생각 하면 기분 이상하죠. 마트에서 어떤 물건이 더 싼지 살피고 할인 쿠폰을 모으고 포인트 챙기고 백화점 세일 기간을 노리고 휘발유 가격을 확인하고, 그런 노력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져요. 그래서 돈 얼마나 아낄 수 있다고…… 집 사고파는 타이밍 한 번 잘 맞으면 다 끝나는 건데.
(장강명, 『산 자들』, 「모두, 친절하다」中에서)

운 없었던 날을 이야기하라는 질문에 어느 하루를 이야기면서 시작하는 「모두, 친절하다」는 늦게까지 고객 응대에 시달리는 대리점 직원, 택배 기사, 이사 업체 인부, 전화 상담원, 인력 파견 회사 직원이 등장한다. 아파트 이름이 바뀌는 것으로 전세금이 올라가는 것을 걱정하고 카드의 종류가 너무 많아 계산을 바로 하지 못하는 배달 기사의 당황스러움이 있다. 그럼에도 모두, 친절하다. 운이 없는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위치에서 땀을 흘린다. 마지막에 형이 보내온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일단 그래도 타인에게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지는 말아야 한다.

『산 자들』은 서술자가 거리 두기를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풍경을 그린다.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문체는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역할을 한다. 사실성을 두기 위해 소설에는 우리가 알만한 인물의 실명이 그대로 표현되기도 한다. 특정 업체는 이니셜로 대체되지만 소설을 읽어 가면 우리가 늘 일상에서 마주쳐서 반가울 지경이다. 집요한 취재의 산물이리라. 어떤 소설을 읽고 나면 쓸 말이 없기도 하는데 『산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급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알리기도 하는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가 『산 자들』의 마지막 소설이다.

희망. 위로를 염두에 둔 것일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고? 아닐 것이다.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전부 날 수는 없다. 혹독한 어른의 세계로 나가기 전의 아이들이야말로 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인 소설이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의 문을 닫는 마지막에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를 두었다. 원래 법이 그렇다는 말 대신에 같이 살 수 있도록 방책을 알려주는 길이야말로 우리를 산 자들로 만들 수 있다. 자르고 싸워도 버팁시다, 우리 죽지 않고. 『산 자들』은 그렇게 말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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