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의 섬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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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새벽에 우리나라를 관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별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지금은 자정이 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창문이 덜컹이고 있습니다. 사방이 빗소리로 가득한 이 밤더위를 이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추리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찾아 헤매는 고독한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오싹해지는 사건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믿고 따라오십시오. 추리의 세계는 넓고 광활하여 손을 꼭 잡지 않으면 서로를 잃어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자, 지금 출발합니다.

혹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여 필명을 에도가와 란포라고 붙인 소설가는 다른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도 하였습니다. 추리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 소설을 모은 『도플갱어의 섬』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사람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500 개가 넘습니다. 단순히 인간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다층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이지요.

저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도플갱어의 섬』을 통해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네 편의 이야기는 흥미로움 이상이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악에서 출발하는 구조를 펼쳐 보입니다. 돈 많은 노파를 죽여 이득을 취하려는 젊은이의 이야기 「심리시험」은 인간이 어디까지 악의 심연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일말의 죄의식을 비추지 않는 그는 아케치 고고로라는 명탐정을 만나 사건의 전모를 발각 당하고 맙니다.

두 번째 소설 「지붕 속 산책자」 역시 단순히 범죄 욕망을 느껴 사건을 꾸미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주인공은 타인이 저지른 범죄에 흥미를 느낍니다. 어느덧 자신 역시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입니다. 옮겨간 하숙집에서 기묘한 가옥 구조를 발견한 그는 원한 관계도 없는 사람을 죽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도플갱어의 섬」은 우연히 들은 대학교 친구의 죽음을 이용하는 악독한 인간의 말로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냅니다. 어느덧 마지막 이야기 「검은 도마뱀」은 독자와 한 판 추리 대결을 벌이는 듯한 구성입니다.

트릭에 트릭. 반전에 반전. 북상하고 있는 태풍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우리를 추리 대결로 몰고 갑니다. 손을 잘 잡고 있지요? 끝까지 놓쳐서는 안됩니다. 아케치 고고로와 미도리카와의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이야기 「검은 도마뱀」 이야기야말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뇌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네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심리 분석을 따로 맡기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형성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지능적이면서 자신이 벌이는 짓에 당위성을 합리적으로 부여합니다.

욕망에 있어서 담대하고 솔직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가져야 하며 방해물은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립니다. 몇 십 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재 벌어지는 흉악 범죄의 인물상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독자를 사건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는 문체는 에도가와 란포가 이야기의 안내자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에게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돈을 얻고 싶다거나 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로 타인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인물에게 공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과응보라는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아케치 고고로라는 탐정을 기용해 사건 해결의 명쾌함을 주면서 끝납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열린 결말이라는 독자를 다소 혼동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최후를 그리기보다는 사건 해결에서 오는 쾌감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곳곳에 놓아둔 트릭을 회수하면서 이야기의 끝으로 빠져나오면 됩니다.

『도플갱어의 섬』에 실린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 존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성을 기준으로 인간과 동물을 나누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미처 인간이 되지 못한 동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어떤가요. 당신은 당신을 믿을 수 있나요. 당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광기의 폭풍을 잠재울 무언가가 있나요. 허구 속 사건과 사건 사이를 헤매다 보면 분명 당신을 인간답게 만들어줄 힌트 하나씩은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곳은 에도가와 란포라는 세계입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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