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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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연작 소설 『유랑가족』은 짠하고 짠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다섯 편의 소설은 '유랑'이라는 주제로 묶인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고단한 삶을 그린다. 공선옥은 소설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펼친다. 가난하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작위적이지 않으며 서사를 중심으로 소설을 꾸려 나간다. 소설을 읽는 동안 지나온 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자주 한숨을 쉬었다. 『유랑가족』은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현실에서 그때를 이야기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좋지도 않은 그때를 귀 기울여 들어줄 이를 쉽게 찾기도 힘들뿐더러 이제는 잊고 싶기 때문이다. 『유랑가족』은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그때가 힘들었을 이에게는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한이 찾아간 그곳에는 집을 나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있고 두고 온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애달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하는 것은 지독한 가난으로 마음이 헐었기 때문이다. 사는 게 고달파서. 나의 마음조차 다스릴 수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난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손에 뭐라도 쥐고 가야 체면이 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고 온 것 때문에 매일매일이 눈물이다. 소설은 연작 형태로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진다. 한 편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궁금했던 사람의 사연을 들려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명화의 사연을 다룬 「가리봉 연가」를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설이라서 이렇게까지 비극의 결말로 밀고 나간 것인가. 소설이니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공선옥의 소설은 이야기의 힘이 크다. 생생한 입말과 다양한 세대를 대표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소설을 장악한다. 개발에 밀리고 마을에 댐이 생겨 사는 곳을 떠나야 하는 막막함이 『유랑가족』에 담겨 있다. 가난은 사람을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소설 속 그들은 누구를 탓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를 챙긴다. 아픈 이가 있으면 죽지 않게 보초를 서 가며 안위를 걱정하고 없는 돈에도 아이에게 닭튀김을 시켜 준다. 떠돌이 가족이지만 떠돌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실에 기반한 연작 소설이라 공감이 간다. 읽다가 더 못 읽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영주의 이야기를 그린 「남쪽 나라 푸른 바다」가 그러했다. 친척을 찾으러 가서 만난 암담한 풍경. 영주의 행복한 내일을 빌었건만 사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직도 이런 소재로 소설을 쓰는가, 의문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좋아진 척을 할 뿐이다. 과거는 단절된 것이 아닌 채 현재와 연결된다. 『유랑가족』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지금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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