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 OL 살인사건 걸작 논픽션 14
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1997년 3월 19일 허름한 맨션에서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 되었다. 그녀는 3월 8일 밤 이후를 기점으로 사라졌었다. 발견 당시 그녀가 있던 곳은 빈 집이었고 평소 그녀가 메고 있던 가방의 끈은 끊어져 있었다. 게이오 대학교 출신의 도쿄 전력의 간부였던 그녀가 왜 그곳에 죽어 있었던 것일까. 사건 이후에 하나씩 밝혀지는 실체는 해결 보다는 미스터리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발견된 장소는 미루야마초의 러브호텔 골목과 인접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낮에는 도쿄전력에서 엘리트의 모습으로 밤에는 미루야마초 거리를 중심으로 매춘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일본 사회는 충격과 경악에 빠졌다. 왜?라는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한 논픽션 작가의 집요한 탐색의 기록이 담긴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수사 초기 사항부터 재판의 과정까지를 다룬다. 명문 집안의 출신인 와타나베 야스코라는 여성의 사건을 쫓는 사노 신이치의 기록을 따라가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하는 황색 언론의 잣대가 아닌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일본 최대의 전기와 가스 공급 업체인 도쿄전력의 임원으로 경제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누가 봐도 선망의 대상인 야스코는 밤이 되면 다른 얼굴의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호스티스로 일했고 나이가 들자 거리로 나가 매춘을 시작한 것이다. 평소 꼼꼼한 성격대로 그녀는 수첩에 상대 손님의 수와 가격을 적었는데 죽기 전 최근에 적힌 금액은 2000엔에 불과했다. 사노 신이치는 범인으로 몰린 네팔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네팔에 날아가 증인 정취를 하는 등 이 사건에 3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붓는다.

억울하게 타향에서 감옥에 갇힌 이의 무죄 증명과 맞물려 그는 와타나베 야스코의 내면세계를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 사건의 배후를 밝히려고 한다. 야스코의 아버지 역시 도쿄전력에서 간부로 일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존경했고 그처럼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의 정신을 이루는 한 부분을 파괴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선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그녀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려는 수단으로 매춘이라는 기괴한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실제 사건을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들려준다. 때때로 와타나베 야스코라는 인간에 대한 연민도 숨기지 않으면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고 한다. 돈과 성이라는 인간의 욕망이 응축된 환락의 거리에서 한 여자가 죽었다. 그녀는 3월 8일에 죽었으며 10일이 지난 시점에 발견되었다. 그동안 그녀의 죽음을 아무도 모른 채 살아간 것이다. 언론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녀의 사생활을 캐며 자극적이고 추측성 기사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보다 흥미 위주로 다가가려 했다.

일본 경찰은 증거 보다는 용의자를 끼워 맞추어 사건을 처리하려는 안일함을 보였다. 그 결과 한 사람의 꿈과 희망이 좌절되어 타국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을 갇혀 살아야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연봉이 꽤 높았을 텐데도 야스코는 돈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어묵탕을 사서 어묵은 먼저 먹고 국물은 나중에 먹으려고 봉지에 가지고 다녔다. 공병이 있으면 주워서 돈으로 바꿨다.

자기파괴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생전의 모습에서 사노 신이치는 그녀가 가진 내면의 불안과 고독을 발견한다. 혼자 외롭게 죽어간 야스코의 그날 밤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왜 그녀는 이중 생활을 하며 하루를 버티듯 살아갈 수 밖에 없었는가.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을 읽으며 와타나베 야스코의 마음을 각자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온갖 정신과적인 용어를 가지고 와서 설명하려고 하지만 어쩌면 야스코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타인이 보기에 야스코의 이중 생활은 기괴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