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는 마을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3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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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이바라기 노리코

어딘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하루 일 마치고 흑맥주 한잔 기울일
괭이를 세워두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고 여자고 큰 잔을 기울일

어딘가 아름다운 거리는 없을까
주렁주렁 열매 맺힌 과실수가
끝없이 이어지고 제비꽃 색 황혼
상냥한 젊은이들 열기로 가득한

어딘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아름다운 힘은 없을까
동시대를 함께 산다는
친근함 즐거움 그리고 분노가
예리한 힘이 되어 모습을 드러낼

6월을 건너 찾아간 시간에는 더위가 있다. 중학생 소녀들이 곱게 화장을 하고 스무디를 마시는 계절이 있다. 과일과 버블이 어우러진 청량한 음료를 마시는 뒷모습. 싱그러워 자꾸 눈물이 났다. 까르르 웃음 번지는 여름의 공기 속으로 풍덩. 내 마음 네 마음 우리 마음이 모여 6월에는 춤을 추자.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해 종이학을 접어 내미는 손을 꼭 잡아주자.



기대지 않고
-이바라기 노리코

이젠
만들어진 사상에 기대고 싶지 않아
이젠
만들어진 종교에 기대고 싶지 않아
이젠
만들어진 학문에 기대고 싶지 않아
이젠
그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아
긴 세월 살면서
진정으로 배운 것은 그 정도일까
나의 눈과 귀
나의 두 다리로만 선다 해도
나쁠 것 없다

기댈 것이 있다면
그건
의자 등받이뿐

지금 내가 믿고 싶은 건 책. 책 속의 문장. 문장이 담긴 책. 오래된 책이 내뿜는 이야기의 비밀. 내게만 은근히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 실패한 이야기여도 좋다. 오늘 내가 기대는 건 믿을 수 없어 믿고 싶은 허구. 다음 장을 어서 넘기라는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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