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친구
앙꼬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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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꼬의 『나쁜 친구』는 봉준호 감독의 추천 책이어서 읽게 되었다. 만화책이란 스크롤을 내리면서 읽는 것보다 한 장 한 장 넘겨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해서 종이책으로 읽었다. 전자책도 나와 있다. 참고 하시라. 작가의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나쁜 친구』는 내가 살았던 시기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한 학년을 꿇어 나이는 한 살 위인데 같은 학년이 되어 공부한 언니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름 뒤에 언니를 붙여 부르곤 했다. 펑퍼짐한 교복을 몸에 꽉 맞게 수선해서 입었고 화장도 꽤나 솜씨 있게 하고 다닌 언니.

자주 지각을 하고 며칠씩 무단 결석을 했다. 학급 일에는 심드렁 했고 학교에 와서도 자기만 했다. 소문으로는 집을 나가 광주 어느 다방에 가서 일을 했단다. 가출 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앙꼬의 『나쁜 친구』는 진주와 정애의 열 여섯을 그리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가출을 하는 진주. 아버지에게 피가 나도록 얻어 맞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진주. 진주가 맞는 걸 보고 언니는 기절을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말리다가 맞아서 며칠 동안 앓아야 했다. 왜라고 진주에게 묻는다면 그 아이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중학교 시절 진주는 정애를 만났다. 비슷한 부류라서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학교 화장실에게 가서 말 안 듣는 후배들 때리는데 가담도 했다. 가출해서 여관방에서 잠을 자며 술집에 나갔다. 그러다 다시 집과 학교로 돌아왔다. 부모들은 대개 자기 자식을 두둔하며 이런 말을 한단다. 우리 애가 심정은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럴까, 과연. 『나쁜 친구』를 읽다보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끼리끼리 어울린다. 착한 애는 착한 애들끼리. 나쁜 애는 나쁜 애들끼리. 그런데 그 착함과 나쁨은 주관적이다. 착하고 나쁨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은 자식이 친구를 잘못 만났다고 핑계를 대고 싶을 뿐이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선택할 수 없다.

서로를 알아보는 촉이 발달한 그 시기의 예민한 아이들은 누구와 어울릴지 빠르게 판단한다. 진주는 그림을 곧잘 그렸다. 나중에 만화가가 되어 그 시절에 만났던 정애와의 일을 만화로 그린다. 같이 어울렸던 한 친구는 은행에 다니며 진주네 집 대출 받는 것을 도와준다. 정애는. 어느날 소리도 없이 사라진 정애의 근황은 어떨까. 조금만 알아보면 정애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지만 진주는 그러지 않는다. 무섭고 두려운 것과 마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잘 살고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불안을 욱여 넣는다.

나쁜 친구는 없었다. 어른들이 부르는 나쁜 친구가 있을 뿐이었다. 나를 정의하는데 사용되는 단어는 두 가지였다. 좋거나 나쁘거나. 언제 정신 차릴래라고 말려주고 때리는 어른이 있어서 진주는 살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없던 정애의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현실적인 그림체와 꾸밈없는 솔직한 이야기로 열여섯의 시간을 회상한다. 『나쁜 친구』는 우리를 나쁘다고 부르던 어른들에게 바치는 만화다. 우리는 나쁘지 않았고 나쁘다고 부르던 당신들이 더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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