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옛날 어른들은 요즘 어른들도 그런 말을 자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어른들은 사람은 모름지기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한다는 지엄한 뜻이 담긴 말이렷다. 파다 보면 글쎄 물이 나오고 여기는 우물로 해야겠다는 사건이 생기는 걸까. 비유인데도 자꾸만 따지고 싶다. 한 우물만 파야 한다니 어째서 그런 건데요라는 되바라진 표정으로. 요즘 세상은 이렇게 말하니 엄청 나이 든 것 같은데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한 나이를 살고 있다.

요즘은 한 우물만 파서는 물은커녕 지렁이도 못 만나는 세상이다. 버석버석한 흙만 만지게 될걸. 다양하고 색다르게 살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정한 리듬의 반복으로.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는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인데 시인이라는 것을 감추고 피자를 좋아해서 자주 시켜 먹고 춤을 추고 유튜브에 브이로그 영상을 올린다. 직업이 시인이라는 것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 감추는 것이고 과외도 다니고 시 수업도 나간다.

일이 잘되지 않아 정신과 상담을 받아 잘못 처방해준 약을 먹고 증세가 호전되는 경험을 한다. 심리 상담은 안 맞는데 처방약은 잘 듣는다. 친구들을 별명으로 부른다. 과외 한 학생과는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어 사이공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블로그에 쓴 일기를 모아 펴낸 산문집이라 술술 읽힌다. 다른 사람 일기 읽는 재미가 쏠쏠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진리. 이별의 아픔을 이별로 승화하라고 해서 독자 한 명을 잃기도 한다. 시의 원고료 한 편은 삼만 원. 원하는 스탠드는 6만 2000원. 장바구니에 담긴 스탠드를 결제하기 위해 원고료와 스탠드와 상관관계를 심도 있게 고민한다.

싫다고 직접 말하지 말고 싫은 건 니 일기장에 쓰라는 말이 있다. 아시려나. 모르면 말고. 싫은 건 니 일기장에. 괜히 SNS 같은 데에 올리지 말고 열쇠가 달린 앙증맞은 일기장에 그날 있었던 싫고 짜증 나는 일을 쓰라는 어른들의 뜻깊은 말을 새겨듣는다. 문보영 시인은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시를 쓸 때는 삽질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데 시가 되지 못한 시가 될 뻔한 글이 일기가 되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일기 입장에서 보면 싫기도 할 텐데 읽는 사람은 재밌다.

진짜 중요하고 말 못 할 이야기가 담긴 일기는 비공개로 있겠지. 인력거라는 친구와 사이공 여행 가서 경찰인지 강도인지 모를 사람과 있을 때에도 동생에게 블로그에 비공개 일기가 있으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보내줬다. 어떤 일기가 있을까.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자아 반성과 더불어 현대 문명의 이기와 위선과 가식이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 곳곳에 있지는 않다. 시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라고 밝히며 시를 비롯한 문학을 좋아하는 자신을 사랑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갈등하는 사람의 내면이 담겨 있다.

내가 쓰는 게 시가 될지 일기가 될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대부분 쓰레기가 되어 버릴 것임을 알고서도 쓴다. 우울한 마음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1년 동안 스물다섯 권의 일기장을 썼단다. 마음은 고쳐지지 않고 필력만 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을 미워해도 그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싫은 건 내 일기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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