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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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에게.

설아, 안녕. 잘 지내고 있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아 많이 놀랐지?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조금은 알고 있단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바로 심윤경 소설가가 쓴 너의 이야기인 『설이』를 읽었기 때문이지.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너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가도 환해지기를 반복했단다. 어떤 장면에서는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책을 들고만 있었단다. 쉽게 할 수 없는 너의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줘서 정말 고마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너의 말을 듣고 간직하고 있을 거야.

부디 힘내

라는 식상한 말은 하지 않을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설이 너는 씩씩하게 이모와 살고 있을 테니까. 통백 식당의 양념 돼지고기와 파김치를 맛있게 먹고 있겠지. 그런 너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워. 새해 첫날 풀잎 보육원 근처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너를 원장 선생님은 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 네가 간직하는 최초의 기억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한 것이었어. 너는 있는 힘껏 다해 울음을 터뜨렸지. 세상의 사람들은 너를 불쌍하고 가엽게 여겼지.

괜찮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너를 마음 아파했어. 따가운 시선과 의혹의 눈초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너는 공부를 잘하는 쪽을 선택했어. 사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선택보다는 선택을 당하는 쪽이겠지. 공부란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법이니까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난 너의 명석함이 부러웠어. 네가 유기아동이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어. 너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아이니까 말이야. 설아, 배경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환경도 마찬가지야. 불우하다고 해서 전부 나쁜 세계에서 살아가는 건 아니야.

그걸 네가 증명해줬잖아. 헝거 게임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하고 화장품을 사기 위해 상금이 걸린 각종 경시대회에 나가는 설이.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를 너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씩씩한 설이. 그 모든 행동은 너다움을 잃지 않기 위함인 걸 나는 눈치챘단다. 나 역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사소한 노력을 해가며 살아왔거든.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네가 세상에 대해 깨닫고 알아가는 것에 지지와 박수를 보냈어. 너와 나의 삶이 어느 순간 교차되고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어 너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어.

공감과 연대를 보여준 너의 삶에 나는 무한한 존경을 바치며 이 편지를 마무리할게. 세상은 각박하지만 온기로 물들어 있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자라는 동안 너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들이 꼭 있을 거야. 힘을 내지 않아도 힘이 나는 하루를 보내기를 바랄게. 우리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야. 무한정 밝은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너로 인해 누군가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해.

사랑한다

는 말을 꾸밈없이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우리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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