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그냥 읽었다. 누군가 책에 관한 감상을 물어온다면 그냥 읽었어라고 자주 말하는데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최고의 찬사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두 가지인 것이다. 재미없다 와 그냥 읽었다. 재미없는 편인 아니었고 그냥 읽을만한 정도의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는 하루키. 어쩌면 국내판 제목이 더 근사한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으로 읽었다. 뭐지, 뭔가 하는 감상을 남기고 다음 책으로 쓱싹쓱싹 독서의 세계를 넓혀 나갔다. 에세이를 특히나 즐겁게 읽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읽었다. 세계적인 작가가 살아가는 일상의 스케치를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하루키는 좀 독특한 작가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는 것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다가 든 생각은 이 에세이는 어디서 읽은 것인데라는 것이었다. 분명하다. 나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 실려 있는 에세이 몇 편을 언젠가 읽었다. 벌거벗고 집안일을 한다는 미국 가정의 주부와 일본 가정주부의 이야기는 전에 읽었다. 예전에는 하루키의 책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집에 한가득 있었는데 정리했다. 이 글을 읽을 리 없겠지만 하루키 씨 죄송합니다. 분명한 건 다 읽고 정리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전자책을 주로 읽고 있는데 다행히 몇 권의 소설이 이북으로 나오고 있어서 그걸 사 모을 예정입니다. 『태엽 감는 새』는 벌써 사놓았지요. 혹시나 이 글을 읽는다면 한국 독자인 저를 위해 전자책으로 작품들을 낼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을는지요. 굽신굽신. 어쨌거나 나의 기억력은 영 쓸모없지는 않았는지 그때의 괴상했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알몸으로 집안일을 한다는 것.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다. 그것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니.

스물여섯에 소설가가 될지 안 될지 미래의 일이란 당장 내일의 일도 알지 못하는 그때에 하루키는 뮤즈라는 샴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다. 이래저래 소설가가 되고 외국에도 나가 살면서 뮤즈는 다른 집에도 맡겨지고 이사도 다니면서 장수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 실린 에세이를 쓰는 동안 함께 했다가 책이 나온 시점인 일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후기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을 뮤즈의 영혼에 바친다고 밝히고 있다. 고양이라는 생물과는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 말고는 접촉을 해본 적이 없지만 꽤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인가 보다.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의 인터뷰집 『언더그라운드』와 시기상 겹치며 쓴 에세이는 작가 하루키의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가 경쾌하게 전개된다. 한 쪽에서는 사건 피해자들과 만나며 이야기를 듣고 옮기고 다른 쪽에서는 그만의 감각으로 전혀 다른 세계의 생활을 들려준다. 여러 얼굴과 감성을 가진 작가인지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와 에세이스트, 논픽션 작가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하루키는 대단하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라는 말은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나온 말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도 나온다.

말보로맨의 입간판은 뒤쪽에서 보면 쉽게 파악이 안되는 기묘한 상태라 뒤쪽만 보고는 무엇을 광고하는지 알 수 없다. 입간판의 앞을 알아야 뒤만 보고도 '아, 저거 말보로 맨 이지'하고 아는 것이다. 그는 말보로맨의 입간판 뒷면을 몹시 좋아한다. 마이너한 관심사에 취향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소확행'이라고 말한다. 소확행 소확행 하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라라고 명령하는 듯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무사 태평하고 건강한 유쾌함을 가진 하루키의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만난 '인생의 소확행'들이라면 네, 네 작은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의미 없는 짓을 하며 살게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모처럼 양복을 입고 식당에 갔는데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아 아침나절의 귀중한 시간을 고객 불만 편지 쓰는 일에 힘을 쏟는다. 이상한 이름을 가진 러브호텔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공중 부유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는다. 달리기를 하는데 준비 운동을 지나치게 한 나머지 정작 본선에는 나가지 못하는 읽고 나면 날아가 버리는 가벼운 하루키 씨의 일상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 촘촘히 모여 있다. 의미 없는 것이 모여 의미를 이룬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라는 책을 요약하면 이렇다.

여러 번 읽어도 감탄하는 일화가 있다. 재즈 바 사장에서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그 '어느 하루'의 이야기.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도 실려 있다. 그가 밝히는 것처럼 그는 그 하루의 일을 여러 군데에 썼다. 기억력 제로인 나도 기억할 수준이면 꽤나 썼다는 이야기이다. 여러 날과 다르지 않아 무심히 지나갈 수 있는 '어느 하루'는 작가로서의 자아를 발현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나도 따라 해보는) 소문의 진상 『상실의 시대』를 사서 읽고 정리하고 다시 예쁘게 나온 『노르웨이의 숲』을 샀단 말이죠.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의 전자책이 딱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사야 할까요라고 물어봤지만 저는 살 것 같습니다. 일본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하루키 씨의 요즘 발언과 작품에 다시 반하기 시작했거든요. 다시 그의 에세이를 읽어보니 그는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답답함과 편협함에 솔직한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더군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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