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주일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금요일 저녁. 내일부터 시작되는 주말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일찍까지는 아니지만 열두시 전에 일어나서 씻고 나가볼까 하는 근사한 계획을 세운다. 밀린 드라마를 보고 잠이 든다. 일어나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다시 잠이 든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놓고 볶거나 비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ㄴ서 먹는다. 먹고 나가려고 했지만 잠이 온다. 잔다. 이틀 중 하루가 그렇게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면 일요일인 내일은? 나는 나를 잘 아니까. 그냥 자고 책 읽다가 자고 일어나고의 반복. 여행은 언제나 멀고 먼 세계의 일이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머무르는 자에서 떠나는 자의 이유가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굳이 이유를 늘어놓지 않아도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당당하고 멋지다. 적어도 여행 계획만 세워 놓고 떠나지 않는 내게는 그렇다.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고 그곳의 숙박지와 차편과 관광 명소를 알아봐야 하는 일. 그것까지는 그런대로 한다고 해도 가방을 꾸리고 문을 나서는 일을 하지 못한다. 대신 누군가 다녀온 기록을 읽는 일에는 후한 편이다. 『여행의 이유』에도 나오지만 나는 '내방 여행자'이다. 가고 싶다. 그러나 가지 않아도 좋다. 여행에 대한 가지 않아도 좋은 이유로 책을 쓰라고 한다면 능숙하게 써 낼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의 첫 이야기를 「추방과 멀미」라는 근사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겨울 방학을 맞이해 소설을 쓰러 간 중국 공항에서 비자가 없는 이유로 하루 만에 한국으로 추방당한 이야기. 소설가이므로 언젠가는 이 사건도 글로 쓰지 않을까 위로했다. 여행자의 태도란 돈과 시간을 들여 내가 이곳까지 왔으니 전부 보고 듣고 기록할 것이라는 의무감으로 채워진다고, 그 역시 첫 여행에서 그랬다고 밝힌다. 여행이란 본국에서의 추방이 아닐까. 일상에서 추방당한 자들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떠난다.

오디세이아 이야기와 그가 출연한 예능에서 느낀 점을 풀어 놓으며 여행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우리 모두는 지구의 승객이라는 시인의 시도 기억에 남는다. 광활한 어둠 속에 떠 있는 푸른 별의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다. 떠나고 돌아오고. 떠났는지도 모른 채 돌아오기도 한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여행이란 기록물로의 떠남이다. 여행자들이 가져온 기록으로 상상하고 느끼고 깨닫는다. 간접적이고 실속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여행의 이유』에서 들려주는 떠남과 돌아옴의 이야기는 나를 설레고 들뜨게 한다.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고 김영하는 말한다. 자신의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고도. 그의 운명은 여행자의 운명. 나의 삶은 돌아오는 자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여행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가져오는 한 보따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오늘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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