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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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이란 어떤 기분일까. 『기분이 없는 기분』의 제목을 보고 한참이나 생각했다. 기분이 없다고 했으니 어떠한 감정도 없을 것이고 기분이 없다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괴로울 것 같은데 일단 만화를 읽고 보자.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던 혜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보이스피싱 전화인 줄 알았다. 살면서 형사의 전화를 받을 일이 흔하게 있겠는가. 소속을 밝힌 형사는 혜진의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알려왔다. 집주인의 신고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독사였다.

그때부터 혜진의 일상은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하게 흘러간다. 언니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사망 확인을 하고 장례 절차를 밟는다. 타살과 자살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돌연사였는데 혼자 살다 보니 늦게 발견되었다. 부패가 진행되어 냄새가 심하게 났다. 아버지의 몇 가지 되지 않는 물건에서 멸치 액젓 냄새가 났다. 한 사람이 죽고 난 이후는 절차의 문제가 남는다. 이혼하고 혼자 산 아버지는 자식에게 남겨 준 것이라고는 예금 통장의 백 얼마와 빚 이억이었다. 삼일장을 치르고 법원에 가서 상속 포기 서류를 접수한다. 혜진은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림을 그리는 건 고사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딸이 유치원에 갈 때 잠깐 일어나서 웃어주는 일도 힘들었다.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겨우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가고 말을 들어주고 다시 눕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밥을 차리고 먹는 일도 힘들어 남편에게 의지했다. 기분이 없는 기분을 느끼며 아무런 감정도 없이 누워 지낸다. 광화문에 나가 촛불 집회를 했었다. 탄핵이 가결되었는데도 기쁘지 않았다. 혜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 변화의 이유를 알지 못해 불안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계속 나는 쓰레기야 하는 말만 한다.

정신과 치료를 하기로 한다. 의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담담하게 말해서 안심이 되었다. 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약을 먹으니 마음이 안정되고 잠도 잘 잘 수 있었다. 이유를 알았으니 나을 것이란 희망이 생겼다.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전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던 일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산책을 하고 남편과 외식을 한다. 정신과 약을 너무 오래 먹는 것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 그건 편견이라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혜진은 기분 없는 기분의 정체를 마주하기 시작한다.

일상을 살면서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마음이 돌이라도 매달린 듯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날은 일어나서 밥 먹는 일도 할 수 없어 내내 누워 지낸다. 기분이 없다면 마음이란 게 없다면 느끼지 않을 감정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마음이 있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을 끊고 지낸 가족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기분으로 현실을 마주 보아야 할까. 『기분이 없는 기분』을 읽으며 혜진의 기분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만화는 현실적이라서 도움이 되고도 남았다.

빚이 있는 부모가 죽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독사의 경우 처리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처리와 철자 뒤에 남은 한 사람의 감정의 변화까지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기분이란 서류와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포기하거나 한정 승인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피하지 말고 마주 볼 것. 기분이 없어진 이유를 알아낼 것. 세수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옷만 걸치고 일어나 문밖을 나가보는 것으로 사라진 당신의 오늘의 기분을 찾을 수 있다. 괜찮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러니 힘을 내고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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