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이희영

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이희영의 소설 『페인트』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출발한 소설이다. 저출산이 도래한 미래의 어느 날이 배경이지만 지금의 모습일 수도 있는 소설의 시간이다.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수 없는 부모들은 국가에 맡긴다. 국가는 그 아이들을 데려다 책임지고 키워준다. 일정 나이가 되면 그 아이들은 부모 면접을 보고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아이들은 태어난 달의 이름과 숫자로 불린다. 제누301은 1월에 태어난 남자아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 대신 국가가 정해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없는 부모들은 NC 센터에서 시행한 시험을 거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아이들은 3차에 걸친 면접으로 자신과 맞는 부모를 고를 수 있게 된다. 국가는 아이를 입양한 사람들에게 각종 지원금과 혜택을 준다. 가끔 혜택을 노리고 아이를 입양해 간 사람이 있어 까다롭게 절차를 진행한다. 제누301은 열일곱 살로 열아홉이 되면 NC 센터에서 나가야 한다. 사회는 NC 센터의 출신 아이들을 차별한다. 애초에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편견 때문에 출신을 숨겨야 한다.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면 고유 번호와 출신을 지워준다. 제누301은 홀로그램으로 만난 부모 될 사람의 면접을 보지만 그들의 가식과 허위를 간파하고 면접 점수를 낮게 준다. 제누301은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 소설의 배경은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저출산이 심각해지는 요즘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들어온다. 아이를 낳았지만 부모가 될 준비가 안된 사람들이 많고 국가는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었다. 우리는 선택 당한 것이다.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시대이다. 태어났는데 아빠가 누구 엄마가 누구. 노력해서 성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부모의 신분과 지위는 하나의 스펙이 되어 버렸다. 너네 부모를 탓해라는 어느 철부지의 말을 반박할 수 없는 슬픈 시간을 살고 있다. 돈도 실력이라는데 그게 아니고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자아실현하고 중산층 정도로는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다물어야 한다. 『페인트』는 묻는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으면 어떻게 할래? NC 센터의 아이들, 즉 국가의 아이들에게 부여된 선택권이란 그들이 원래의 부모로부터 버려지면서 얻게 된 것이었다.

이희영 소설가는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닌 되어가는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페인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선택이란 할 수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됨을 뜻한다. 부모를 선택한다? 그러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부모가 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이의 부모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했다면 부모로 되어가는 것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페인트』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