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노동 찾기 - 당신이 매일 만나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8
신정임.정윤영.최규화 지음, 윤성희 사진, 김영선 / 오월의봄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는 《특별근로감독관조장풍》이다. 전직 체육 교사인 조장풍으로 불리는 조진갑이 근로감독관으로 맹활약을 선보인다. 저런 근로감독관이 어디 있겠어라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야간 근무에 시달리는 IT 업체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은미 씨를 도와주는 조진갑. 직장에서는 조주사로 불리는 그는 근로기준법을 예로 들며 악덕 사장과 더 나아가 거대 악인 TS 기업의 비리를 밝히고 있다. 드라마가 진행 중이어서 어떤 결말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부디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먼 나라 미국에서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영웅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복수를 해주는데 우리 곁엔 조장풍만이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 한 명이 있었으면 했던 게 소원이었다. 읽기 어려운 근로기준법을 해석해주고 법 조항이 타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해줄 대학생 친구. 결국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죽었다. 그가 떠나도 우리 사회는 근로기준법이 있는데도 그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노동자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다. 식당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퇴직금을 달라고 하자 기분이 나쁘다며 700만 원의 돈을 천 원짜리로 바꾸어 세어 가라고 했던 사건이 있었다. 원래 퇴직금을 주지 않는 건데 달라고 했다고. 그 일을 노동청에 신고해서 감정이 상했다고. 그분은 두 시간 넘게 식당에서 천 원을 세어야 했다.

더 나열할 것도 없다. 법은 있는데 멀고 똑똑한 자들이 자신들 편의를 위해 이용한다. 『달빛 노동 찾기』를 읽다보며 든 생각은 우리 곁에 조장풍 같은 사람이 현실에서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안다. 조장풍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조장풍이 되어야 한다. 야간 노동자의 이야기를 르포로 기록한 『달빛 노동 찾기』에는 스스로가 조장풍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일하는데 직원이 아니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직원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모두 원청이 아닌 하청에 속한 용역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3D 업종이라는 말 있잖아요. 우리는 4D야. 드림리스(dreamless). 갈 데도 없고 꿈도 없는 거지. 일하는 사람 30퍼센트가 혼자 살아요. 아니면 남편이 장애가 있거나 병원에 있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와요. 생계가 절박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우리 하는 일이 비인간적이라고 봐요. 매일 여기서 사긴까 혼자 사는 사람들이 오래 남아요. 가정이 있어도 남남처럼 살고."
(『달빛 노동 찾기』, 「비행기에 저당 잡힌 혁명가」中에서)

이 책에는 자동차 구내식당 조리원, 대학에서 근무하는 시설관리직, 교도관, 병원 지원직, 지하철 역무원과 신호직, 방송 작가, 우정 실무원, 공항 관리직, 고속도로 순찰원의 노동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밤에 일한다는 것이다. 주야간 교대 근무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취재하고 있다. '야간 근무는 2급 발암물질'이라는 말이 잊히질 않는다. 그들은 낮과 밤이 바뀐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명과 근골격계 질환, 수면 장애, 공황 장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야간에 근무한다고 해서 수당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비정규직으로 정규직과 다른 임금 체계에 따라 기본 수당에서 조금 더 받는 수준이다. 월급을 더 받기 위해 야간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데도 주간에 일하는 정규직보다 임금이 훨씬 낮다.

야간 근무 다음에 바로 오전 근무에 투입되었다.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집에 있다가도 가야 한다. 방송 작가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다. 전화를 꼭 쥐고 있어야 하고 개인 생활은 쉽지 않았다. 막내 혹은 내 커피라고 불리는 수모도 견뎌야 했다. PD의 말이 절대적이며 그들은 작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야간 근무조를 2인에서 1인으로 바꿔 휴게 시간조차 없어졌다. 고속도로 순찰원의 경우 사고가 나면 한국도로공사에서 보험 처리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비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망자의 보험금을 유족이 아닌 사장이 대신 가로챈 경우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조를 만들고 사람들을 모았다. 관련 법을 찾아 잃어버린 권리를 찾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를 하고 오전 근무에 투입되는 걸 바꿨다. 받지 못했던 수당을 받고자 소송을 했다. 외국인이 와서 가장 놀란 건 한국의 24시간 문화였다. 새벽에도 밥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곳. 편의점이 골목마다 불을 밝히고 있는 곳. 우리가 자는 사이에도 누군가는 땀 흘리며 일 하고 있다. 그들의 달빛 노동이 어두움에 가려지지 않길 바란다. 달은 언제나 빛나고 있다. 밤이 되면 비로소 보이는 달의 존재처럼 그들은 내내 빛나고 있음을 잊지 않겠다. 그들과 우리가 조장풍이 되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