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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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재미있다. 잘 쓴다는. 전자책으로 나온 그의 책들을 사두었다. 원래 책이란 사두고 잊어버리는 것. 삶을 성찰하고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철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성찰하기는커녕 우울감만 높아졌다. 쉽게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점점 책을 읽는 것이 신나지 않았다. 한 번 잡은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결벽증 때문에 재미없어도 읽어나간다. 중도에 포기했다는 느낌이 싫어서. 과감함이 필요했다. 그래, 읽지 말자. 끝까지 읽겠다는 집착을 버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테미스의 검』을 읽기 시작한 건 잘한 일이었다. 인기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독자가 중간에 도망가지 않도록 이야기의 구성을 단단하게 만든다. 반전을 곳곳에 숨겨 놓고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땀을 쥐게 한다, 같은 표현은 진부해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표현이 안 된다. 『테미스의 검』은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수록 긴장감 때문에 땀이 나고도 흘러넘친다. 과장처럼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와타세 경부 시리즈 1권인 『테미스의 검』은 일본 경찰과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죄의 형벌과 판결이라는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다. 


테미스는 법의 여신이다. 두 눈을 가리고 양손에 검과 저울을 들고 있다. 공정한 법의 판결로 정의를 이룩하고 질서를 수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상징이다. 저울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뜻이고 검은 정확한 법으로 죄지은 자들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테미스의 상징대로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신이 아닌 인간은 테미스의 상징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나카야마 시치리의 『테미스의 검』은 법의 정의로움을 묻는 소설이다. 


사흘 만에 집에 들어와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려는 와타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살인이라는 말을 하는 상대는 와타세의 교육 담당 겸 파트너인 나루미이다. 러브호텔이 즐비한 곳에 자리 잡은 부동산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현장은 참혹했다. 사무실에 있는 금고를 노린 범인은 부동산 주인 부부를 죽였다. 칼로 여러 번 찔렀다. 원한과 금전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주변 사람들을 탐문한다. 평소 주인이 사채업으로 돈을 굴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채무자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금고에 남아 있는 지문과 알리바이가 수상한 남자를 범인으로 좁히고 자백을 받아낸다. 문제가 있는 자백이었지만 증거들이 맞아가면서 결국 남자는 사형에 처해진다. 법정으로 가면서 남자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남자는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5년 후, 부동산 살인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와타세는 격랑의 인생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카야마 시리치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자격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경찰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사안일주의와 출세 지향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와타세는 경찰과 한 인간 사이에서 갈등한다. 직업적 의무와 도덕적 책임감 사이에서 와타세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테미스의 검』은 놀라울 정도로 사건 전개가 빠르다.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으로 사건이 주는 복잡함을 명쾌하게 풀어나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원죄冤罪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원죄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는 뜻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했지만 어느 국회의원의 말대로 법은 만 명에게만 평등한 세상이다.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만들겠다는 법은 잘못 악용될 때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린다. 법으로 인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자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테미스의 검』은 테미스의 한 손에 들린 검인 즉, 법은 만인에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를 고찰한다. 와타세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진정한 법과 정의의 실체를 끈질기게 탐구하는 나카야마 시리치에게 박수를 보낸다. 『테미스의 검』을 읽으며 복잡한 내면을 달랠 수 있었다. 나카야마 시리치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다. 와타세 경부 시리즈 2권인 『네메시스의 사자』도 있다. 소름 돋는다. 언제 사 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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