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팝니다 -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처음 읽는다. 『느낌을 팝니다』는 제목이 좋아서 골랐다. 책 표지에 쓰인 '지식 아닌 생활 느낀 것도 팝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느낌을 팝니다』는 사회학자로서 어려운 글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글이 담겨 있다. 대체로 난해한 이론의 글을 읽으면 생각이 딴 데로 가는지라 우에노 지즈코의 다른 책을 읽기 전 훈련을 하는 기분으로 슬렁슬렁 읽었다.(힘들게 쓴 글일 텐데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따분한 내용이 아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쓰인 글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만있자. 쉬운 말인데 자꾸 무언갈 생각하게 하는 멋있는 말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말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하고 싶지 않은 걸 생각할 수밖에. 이불, 커튼 빨기. 남의 눈치 보기. 일찍 일어나기. 돈 이야기하기. 아쉬운 부탁하기. 수학 문제 풀기. 의무감에 사로잡혀 책 읽기 등등이 싫은 일이다. 더 쓰게 싶은데 그렇게 된다면 글이 지루 지루하게 길어질 것 같아 생략.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이렇게나 많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단 하나 있다. 지즈코 씨의 글대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늦은 오후에'에 담긴 마음처럼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하고 싶다. 공부를 많이 해서 대학교수로 살아가는 사회학자의 소원치고는 소박하다.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머릿속에 든 게 별로 없는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오후를 사랑한다. 공부를 하고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느낌을 팝니다』는 '생각나는 것, 좋아하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싱글의 현재'라는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좋아하는 것'에 실린 글들이 좋다. 글쓴이가 좋아하는 것을 썼으니 읽는 사람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해가 지는 것을 책장에 꽂힌 책을 보는 것을 가끔 하이쿠를 읽는 것을 나 역시 좋아한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늘어놓는 글이어도 읽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읽을 수 있다. 『느낌을 팝니다』는 의무감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어서 좋다.

친구가 적었다는 고백에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학자로서 가지는 소신을 솔직한 언어로 들려준다. 실제 우에노 지즈코는 싱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데 나이가 들었을 때 생기는 두려움을 말하기보다 현재를 즐기며 살 것을 주문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족묘에 묻힐 수 없다는 말을 들어도 담담하다. 명절에 내려갈 친정이 없어도 유쾌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휴를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책이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솔직한 위로들이 담겨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지만 책으로써 소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혼자 목욕물을 200리터 받아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이 나온다. 소박한 고민이다. 나이 드는 것은 주눅 들 일이 아니라는 격려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감을 가지고 어깨를 쭉 펴고 살아갈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좋은 느낌을 사서 내일은 기분이 상쾌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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