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오후 네 시에 끝나 집으로 와서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다섯 시. 새벽에 읽다만 책을 잠깐 읽다가 초저녁잠이 들었다. 일곱 시에 일어나 걸어서 칼국숫집에 갔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피곤해 보이는 주인은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반찬은 셀프. 다른 이가 반찬을 가져다 먹는 걸 보고 나도 가서 몇 가지 찬을 가져왔다. 어묵볶음과 겉절이 김치 그리고 콩나물. 간을 거의 하지 않은 듯 심심한 맛이었다. 그 때문에 먹을 생각도 없던 밥을 먹었다. 칼국수와 함께 나온 밥은 윤기가 흐르는 찰밥이었다. 칼국수와 메밀 전병. 12000원.


집 앞에 수제 초콜릿 가게가 있는 걸 유심히 봤다. 통통한 몸을 가진 이유는 단 것을 좋아하고 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붉은 조명이 환하게 켜진 가게의 문을 열었다.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초콜릿 가게에서는 콘서트를 연다고 했다. 캐러멜 초콜릿과 로즈 송이 초콜릿, 막대 초콜릿을 샀다. 11000원. 아, 이 돈이면 한 끼 밥값인데 하는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겨울 저녁에 먹는 칼국수와 수제 초콜릿은 허름한 시절을 밝혀주는 온기 같은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내 가난한 시절에는 마트에서 파는 양 많고 싼 초콜릿을 사서 이불 속에서 까먹곤 했었다.


그때보다 좋아진 것이리라. 나는 변화했고 따뜻한 칼국수 국물을 달달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시절로 건너온 것이다. 김의경의 장편 소설 『콜센터』의 다섯 청춘들에게 오늘 나의 하루를 선물해 주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칼국수와 심심한 반찬을 먹고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라면 들어가서 망설이지 않고 초콜릿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프랜차이즈 피자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다섯 청춘들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들의 공통점이란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스물다섯이라는 것이다.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했지만 정규직으로 취직이 안되어서 그러니까 콜센터는 잠깐 지나가는 정류장이다.


취직이 될 때까지 혹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학비를 벌 때까지만 이었다. 석 달만 일해야지 했는데 육 개월이 되고 어느새 일 년이 넘게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 크리스마스이브, 각종 연휴에 밀려드는 콜을 받느라 그들은 화장실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다. 블랙 컨슈머라고 쉽게 말하면 진상들은 하루에 몇 시간씩 전화를 걸어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상담사의 혼과 눈물을 빼놓는다. 죄송하다고 말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나왔으니 새 피자를 줘야 한다, 자신을 대학교수나 기업체 사장이라고 말하며 반말을 하고 평생 콜센터에서 일하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하는 슈퍼 진상들을 상대하느라 청춘들의 하루는 눈물로 얼룩진다.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콜센터』는 소설가 김의경의 경험이 녹아들어 가 있다. 실제 작가는 피자 주문을 받는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학생이거나 휴학생들 사이에서 외로운 처지로 일을 해야 했다. 살아남는 게 꿈이라던 작가의 사수는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 사수에게 바치는 소설 『콜센터』를 읽으며 이제는 꿈을 꾸는 것보다 아직 꿈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나의 어제와 오늘을 떠올렸다. 김의경은 『청춘 파산』과 『쇼룸』에서 가난한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모두 작가의 체험에서 기반된 소설이었다. 빚을 져 봉고차에 실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집을 구하지 못해 이케아의 쇼룸에서 집의 환상을 그려야 했던 작가의 경험이 소설이 되었다.


슈퍼 진상을 처리하기 위해 다섯 청춘들은 헤드셋을 던져 버리고 부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전화선 너머로만 존재하는 슈퍼 진상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사방이 막힌 벽에서 진상들의 감정 배설 창구로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에게 김의경은 바다를 보여준다. 겨울이란 칼국수와 초콜릿, 바다로 기억된다. 나의 하루를 따뜻함과 달달함으로 마무리해준 칼국수와 초콜릿에게. 주리, 용희, 시현, 형조, 동민의 각박한 삶에 푸른빛을 선사한 바다에게. 고맙고 고맙다고 말해본다. 아프지만 잘 먹고 좋은 것만 생각하려 애써보는 시간으로 청춘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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