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덜 외로운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2
고이케 마사요 지음, 한성례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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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연에 이끌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래, 걱정되겠지. 나도 그때는 그랬어. 여자 혼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고 말이야. 당시에는 눈앞이 캄캄했어. 괜찮아. 만나 보렴. 그런 다음 네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보고 있으니까.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위를 향해 반듯하게 자라나 줘. 자라서 가지를 펼쳐서 너라는 나무의 모든 가지에 작은 새들이 쉬어가게 해주렴. 태어났으니 힘껏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야. 넘어지고 굴러떨어져도 살아가는 거야. 모든 것을 삼키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거야.-

(고이케 마사요, 『조금은 덜 외로운』中에서)


연극배우 엄마를 둔 가쓰라코는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연극이 끝나면 여행을 떠나는 엄마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면 큰 나무를 찾아가 보라는 말을 남겼다. 여행지에서 낙석 사고를 당했다. 절벽에 떨어져 사망해 버린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가쓰라코는 이제 세상에 아무도 없는 혼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없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꼈다. 엄마가 유언처럼 남긴 말대로 가쓰라코는 은행나무 곁으로 갔다. 고이케 마사요의 소설 『조금은 덜 외로운』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이들을 위한 조금 긴 시이다. 고이케 마사요는 시인이기도 하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소설이기도 한 『조금은 덜 외로운』은 나무와 꽃,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준비된 이별은 없다. 그 누구도 작별의 인사를 하고 떠나지 않는다. 이별은 느닷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 사람이 해달라고 하던 부탁을 들어줄 걸 하던 후회만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움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별은 그래서 서글프다. 그이가 없다는 걸 실감할 때 마다 찾아오는 슬픔 때문에 마음이 미어진다. 그런 채로 살아가야 한다. 남은 사람은. 엄마를 잃고 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몰라 여행을 떠나는 가쓰라코의 이야기, 『조금은 덜 외로운』에서 안간힘을 마주한다. 헤쳐나가는 것이 아닌 자신 앞에 놓인 삶의 정면을 바로 보아야 하는 가쓰라코의 성장기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본다.


소설은 엄마를 잃고 혼자가 된 가쓰라코의 내면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별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좌절은 쉽다. 멈춰 서는 것도. 울어서 부운 눈이지만 괜찮은 척 일어나 이불을 개고 창문을 연다. 찬 공기를 마시고 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나가는 것까지.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어렵다. 가쓰라코는 한동안 잠이 오면 자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엄마의 지인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와타루라는 남자에게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듣는다. 엄마처럼 가쓰라코도 연극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첫 연극에 참여하기로 한다. 나무와 꽃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관심이 많은 가쓰라코는 인간의 마음으로 살기를 거부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과 규범을 생각하지 않는 삶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로 한다. 소설은 가쓰라코의 여행지를 따라 나무에 많은 설명을 할애한다. 한 군데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나무의 삶. 지구가 생기기 전부터 살아남은 나무도 있고 지구가 끝나더라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나무도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가진 인간이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나무의 삶일 수도 있다. 가쓰라코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 여기저기를 부유한다. 새로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이들을 보며 스무 살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닌 삶이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가쓰라코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을 정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내면의 들끓는 불안과 정념을 스스로 정리한다. 영혼이 된 엄마가 가쓰라코에게 해주는 말처럼 그녀는 살아간다. 죽지 않고.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남은 흔적을 바라보아야 하는 모든 이들을 다독이는 소설 『조금은 덜 외로운』을 읽고 내일에게 안녕을 말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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