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글자 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1월
평점 :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한 글자 사전』을 일주일 내내 읽었다. 새벽과 이른 아침에 잠깐씩 틈틈이. 글자 하나에 뜻 하나씩. 시인의 눈은 과연 달랐다. 한 글자 안에 온 우주를 담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문장을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다. 글자 하나에 담긴 뜻을 헤아리고 음미하느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글자 사전』은 지친 한 주를 달래주었다. 때론 웃겼고 때론 슬펐다. 국어 대사전을 펼쳐놓고 글자의 뜻을 고심했을 시인의 뒷모습을 상상해본다.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오전을 책상에 앉아 단어를 고르고 펼치고 잘랐을 시인의 생각 많은 뒷모습.
달
변해가는 모든 뒷모습에서 '예쁘다'라는 말을 들어온 유일무이한 존재.
(김소연, 『한 글자 사전』中에서)
낮에도 밤에도 달은 하늘에 있다. 우리 머리 위에. 바빠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어도 달은 살이 쪘다가 빠졌다가 예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변한다는 것. 오늘의 내 마음과 내일의 너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달의 변화는 기쁘기만 하다.
폐
폐가 될까 걱정하는 것이 사람다움이다. 폐가 폐라는 걸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폐가 된다.
(김소연, 『한 글자 사전』中에서)
우리는 사람인데 가끔 그걸 잊고 살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면 안 되는 짓을 서슴없이 할 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눈을 뜨고 살 수가 없었다. 햇빛은 찬란한데 바람은 불어오는데 뉴스에서 날아든 소식 때문에 빛을 느낄 수 없었다.
예
예를 갖추기 위해선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믿는 시대.
(김소연, 『한 글자 사전』中에서)
예라고 한 번만 말해도 되는데 예예 두 번씩 말한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습관이 되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아니오. 아니오. 버스를 탈 때마다 아니오를 연습했지만 언제나 예라고 말했다. 나를 낮출수록 참담했다. 자라지 않는 자존감을 끌어안았다. 내 안의 빛이 꺼지고 문이 닫혔다.
한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책, 『한 글자 사전』을 곁에 두기를 추천한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도 자도 피곤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이 들 때 고른 책이다, 『한 글자 사전』은. 글자보다 여백이 많은 책. 순식간에 문장을 읽고 여백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것과 지나갈 것을 생각했다. 빈 종이에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세상은 많은 말을 만들어 냈지만 시인은 한 글자만을 골라 가장 따뜻한 옷을 입혀 주었다. 우리를 다독이는 데에는 한 글자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