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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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대강 살리기를 하겠다고 온 강바닥을 파헤쳐 놓던 시절이. 지나고 보니 사대강 살리기가 아닌 죽이기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하여튼 온 나라를 건설 현장으로 만들어 놓고 살았던 어느 때가 있었다. 재개발이라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시설금과 권리금 없이 내쫓길 줄 몰랐던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러다 이주비만 받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망루로 올라갔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무자비한 강제 진압으로 불속에서 아름다운 목숨이 사그라졌다. 시골이라고 해서 피해 갈 순 없었다. 깨 심고 고추 모종해 놓은 밭에 뿌연 먼지가 가라앉았다. 아침 밤낮 할 것 없이 돌 깨는 공장은 으드득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공선옥의 장편 소설 『꽃 같은 세상』속 이야기이다.


재개발된다고 해서 좋아하던 영희와 철수였다. 그런데 웬걸. 이사비 몇 푼 쥐여주고 나가란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 한 번 끼칠 줄 모르던 영희와 철수는 어린 아들 복주를 데리고 나와야 했다. 세 식구 꿈이 자리 잡을 횟집이었다. 집을 구하지 못해 어린애는 친척 집에 맡겨 놓고 트럭에 이삿짐을 실은 채 떠돌아야 했다. 그때 복사꽃의 분홍빛이 번지는 집을 발견했다. 팔십 먹은 무수굴댁이 세상을 떠난 집이었다. 혼이 되어 저승에 가지 못하고 빈 집에 남아 있던 무수굴댁이 영희를 반겼다. 대뜸 꽃이 좋아서 살겠다고 하는데 내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큰 아들 만택이 영희와 철수의 입주를 허락했다. 돈도 받지 않고 빈 집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장이 영희를 찾아와 서류를 내밀었다. 동네 레미콘 공장이 업종을 몰래 바꿔 돌 깨는, 채석장으로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집 아줌마가 찾아왔다. 동네 주민이니 같이 모여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자고 했다. 영희는 어린 복주도 돌봐야 하고 한복 기술도 배워야 한다. 얼떨결에 공장 앞으로 갔다. 육십, 칠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당하는 수모를 고스란히 봐야 했다. 젊은 사람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영희가 대책 위원장까지 맡았다. 시를 쓰는 게 꿈인 영희는 탄원서를 쓰고 감사원에 낼 서류를 작성한다. 남편 철수는 그런 영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도 싸우는 게 힘들어.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나는 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거야. 복주야, 엄마는 지금 순양석재하고 싸우는 게 아니고 그, 뭐야, 어, 그니까, 그래 맞아, 내 속의 패배주의하고 싸우는 거야. 긍게, 내 속의 패배주의와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냐 하며는, 이기든 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억압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여. 말하자면 긍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산다는 것이여. 주체적으로 산다는 거라고, 알겠지?"

(공선옥, 『꽃 같은 세상』中에서)


어린 복주는 영희의 말을 듣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라고 추켜 세운다. 철수는 욕을 하고 지리산으로 떠나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희는 언니들과(처음에는 할머니였다가 아줌마 그리고 언니로 연대하는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바뀐다)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밥을 지어먹고 지나가는 사람들 불러다가 숟가락 쥐여주고 서울서 소설 쓰러 왔다는 해정의 집에 찾아가 자신이 쓴 탄원서를 보여준다. 집 한 채 없이 남의 집 빌려 사는 영희는 그런 저런 패배감 없이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 불법인데도 그걸 묵인하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이야기하는 세상을 향한 춤판을 벌인다.


소설은 망자와 산자를 불러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밥을 먹인다. 꽃 같은 시절을 지내보지도 못하고 죽은 이는 그 시절이 억울해서 노래를 부르고 꽃 같은 시절을 살다 왔다고 자랑하는 이는 신이 나서 춤을 춘다. 공선옥의 생생한 언어는 우리가 살아 있는 시절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곧 죽을 운명인 우리의 내일을 토닥여준다. 재개발, 철거, 데모, 민원, 소송, 재판이라는 단어를 어린 복주는 엄마 곁에서 배운다. 아직 글도 모르는 그 아이에게 위로를 할 순 없었다. 다만 영희는 복주에게 우리는 함께 하는 연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몸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해정씨, 저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을까? 이 세상에는 가만히 눈 감고 귀 열고 입 닫고 있어야만 나는 소리, 냄새, 몸짓들이 있다는 걸 알까? 모란꽃에 취해서 엄마 죽은 것도 잊어버린 아이가 있다는 걸 알까? 알면 야단을 칠까, 눈물을 흘릴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지네."

(공선옥, 『꽃 같은 세상』中에서)


자기 말만 하느라 사업에 우정이라는 단어를 붙여 놓고 뻔뻔해지느라 지렁이가 저승새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울고 우는 소리를 공장 돌리고 트럭 모느라 모른척한 세월이 있었다. 꽃이 피고 다시 꽃이 피고 울고 싶을 땐 그저 우는 사람들의 얼굴에 모욕을 주던 시절을 살았다. 공선옥의 문장은 그가 그려내는 소설의 시간은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슬픔에 겨워 남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지 배를 곯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때 공선옥은 우리에게 소설 밥을 먹이느라 꽃 같은 시절을 울며 살았다. 공선옥의 소설이 있어 꽃 같은 세상 시름 없이 살다 갈 수 있겠다. 가난해도 가난한 것을 모르며 웃는 소설이 있어 아름다운 것에 취해 꽃을 보며 살 수 있겠다. 신명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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