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주파수 - 청소년 테마 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41
구병모 외 지음, 유영진 엮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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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한다. 닥치지 않을 일 때문에 불안에 빠진다. 성격적 결함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나의 모습이 싫다. 대범하고 담대하지 못하고 소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도 빠른 행동력을 보이지도 못한다. 누가 골라 주고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행동보다 걱정을 먼저 하는 성격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환경을 탓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겨내지 못한 미성숙한 태도일 뿐. 살아있는 한 나는 끊임없이 실체 없는 불안에 시달릴 것이고 그게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청소년 소설가들이 '불안'을 주제로 쓴 테마 소설집 『불안의 주파수』를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불안이 퍼져 나간다. 나와 비슷한 이들이 나의 불안에 응답한다. 고유의 주파수를 가진 우리가 만난다. 서로가 가진 불안의 크기를 가늠한다. 지구 밖에서 빅뱅 이전의 우주에서 우리는 충돌한다. 일곱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불안의 시기를 지나 온 것이 아닌 불안의 시간을 견디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숨죽인 채 울고 있는 나의 손을 잡아준 것은 이야기였음을 떠올린다.


누가 책임져 주지 않는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토바이 헬멧을 쓰는 소년의 이야기 진형민의 「헬멧」. 새는 알을 깨고 나오듯 허물을 벗어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암시를 가진 이야기 「단추인간 보고서」에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주저앉아 있던 한 시기를 생각했다. 이 세계가 견고함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구병모의 「유리의 세계」를 지나 지독한 자기애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오문세의 「거울 속에 있다」는 여드름투성이로 지낸 겨울 방학을 지내던 나를 불러내었다.


「어디에도 있는」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서 지내는 '나'는 함께 지내지만 한 번도 얼굴을 본적 없는 룸메이트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그러다 정작 알아야 할 '나'란 존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을 알아채고 세계를 이루는 것은 느낌표가 아닌 의문부호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딸_상실한 구역」은 살인자의 딸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아이가 나온다. 송미경의 「마법이 필요한 순간」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상징이 담겨 있다.


불안도 힘이 된다.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지나 어른이라고 규정된 시간을 사는 나는 불안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해 불안도 힘이 된다고 믿어 버린다. 이야기를 읽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야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이 아닌 지지와 격려를 받았다. 너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괜찮아, 한 마디면 충분했다. 걱정마라고 말해주면 모든 슬픔이 사라졌다. 여전히 나는 약하고 상처받고 주눅 든 채 살아가고 있다. 다행이다. 강하고 상처 주고 허세를 부리는 것은 세계를 급속하게 파괴하는 일이므로. 내가 가진 불안의 주파수가 너의 불안에 가닿을 때 이야기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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