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로 바로 시작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김금희의 소설은 나의 취향과 부합한다. 짧은 소설 열아홉 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의 첫 시작은 대부분 이렇다. '윤경은 눈을 뜨자마자 산술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원피스를 돌려줘」) '희영과 소영 그리고 한영은 대학 동아리에서부터 '영 자매'라고 불렸다.'(「규카쓰를 먹을래」) '신촌의 회사에 들어간 뒤 선미는 1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다니며 주로 차 안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미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마지막 전철을 막 탔을 때였다.'(「야간행」)


  생활이 그래서 그런지 글도 구질구질한 걸 싫어한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글도 단도직입적인 걸 좋아한다. 문장을 끝내지도 못하고 뭐, 저, 그게, 그러니까라는 말을 하는 순간을 참을 수 없어 하는데 글은 그렇지 않으니까, 나 대신 마침표까지 찍어서 할 말 안 할 말 다 해주는 인물이 나오니까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산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김금희의 소설 「원피스를 돌려줘」의 윤경처럼 헤어진 연인에게 문자 해 원피스를 돌려달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작가가 부러 만들어 놓은 그 상황 자체를 즐기는 건 좋아한다. 


  두 명만 모여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버벅대는데 이름의 끝자리가 같다고 세 명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 「규카쓰를 먹을래」의 '영자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괜찮다고 여긴다. 그것은 소설이고 소설은 이야기가 있고 김금희는 내가 느껴본 상황을 소설 안에서 길고 길어서 대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니까 나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천천히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읽는다. 읽다가 소설이 몇 편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중간에 딴짓을 하기도 했다. 다 읽어버렸다는 실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의 소설 속 인물은 어디에나 있어서 내가 아는 사람 같기도 해서 혹시 내 이야기 아니야라는 착각을 줄 정도이다. 광역버스 안에서 아침을 먹는 선미. 오랜만에 만난 연인과 근사한 저녁을 먹고 싶어 일부러 '파리 살롱'에 앉아 있는 윤.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춰 주변 사람에게서 그림자로 오해받는 윤석 선배. 사실 동생이 먹을 줄 알고 일부러 라면을 남겨 왔던 누나 영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가락 하나와 한쪽 눈을 잃은 동생의 인생을 슬퍼하는 아버지. 


  김금희가 그려내는 소설의 인물들의 삶에서 나는 추억과 그리움, 짠한 격려를 받는다. 어디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몰라 탁탁 끊어내는 단호함을 부리지 못하는 듯한 긴 문장을 읽으며 삼 주째 앓고 있는 감기는 왜 낫지를 않을까, 얼마 전에 큰 결정을 했는데 그게 거짓이고 사기는 아니었을까, 그 일은 정말 일어날 것인가 온갖 의심을 하면서도 김금희가 펼쳐 놓은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하루를 애틋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마트에서 로봇을 사와 혼자 있는 할아버지에게 대화용으로 선물을 하기도 할 것이며(「춤을 추며 말없이」) 유년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은 리셋이라는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기도 할 것이다(「오직 그 소년과 소녀만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서서 기침을 하며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하루(「야간행」)를 가진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을 지구별에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현실의 만남은 소모적이고 때론 지쳐서 내일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소설을 넘기는 여유를 아직 나는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끝이 날까 딴짓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결말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고 기대한다. 김금희의 소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