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은 채식주의자 짧아도 괜찮아 4
구병모 외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에 가면 쥐덫에 잡힌 쥐를 보곤 했다. 짓궂은 남자애들이 죽은 쥐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나를 비롯한 애들은 무서워서 구석에 숨었다. 쥐를 내 쪽으로 던졌다. 소리를 지르다 못해 울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쥐는 무섭다. 세 들어 살던 집에는 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했다. 밤에 화장실에 갈 때 녀석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푸르게 빛나던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고양이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한다. 동네에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어쩌다 그 개 앞을 뛰어갔는데 묶여 있는 줄로만 알았던 개가 뛰어와 내 엉덩이를 물었다. 산책 중인 강아지를 만나면 못 본 척 돌아가는 이유다. 


  그리하여 쥐과인 햄스터를 키운다거나 고양이 발을 만져본다거나 개를 품에 안는다는 일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쫓기고 물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털이 있든 없든 동물은 내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중요하다, 유년의 기억들은. 가까이 가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라면 가능하다. 뚱뚱한 엉덩이를 실룩이며 걷는 강아지를 보기도 하고 개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개양이를 귀여워한다. 그것은 거리가 주는 안도감 때문이다. 무언갈 키운다는 것은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 되면 밥 주고 산책을 하고 아프면 돌봐주는 일들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물론 반려동물이 주는 위안과 다정함이 따라오지만 살아 있는 것을 돌봐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이길 수 없다. 


  걷는사람에서 나오는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 네 번째 주제는 '동물권'이다. 인간에게 부여되는 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고통을 피하고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동물권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 한동안 닭을 먹지 않았다. 모든 고기를 끊을 수 없으니 좁은 닭장 안에서 학대받으며 도축되는 닭만은 먹지 말자고 결심한 것이었다. 닭과 소, 돼지 등 사람들이 먹는 육류의 공정 과정은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포어는 미국의 최대 닭 소비량을 자랑하는 KFC의 닭 도축장을 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본사가 포어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민은 채식주의자』에서 소설가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소, 고릴라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쟁에 쓰이는 개의 이야기를 다룬 구병모의 「날아라, 오딘」을 시작으로 키우던 주인이 아프자 맡겨지는 고양이의 미래를 그린 「미래의 일생」,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햄스터를 덜컥 사서 키우게 되는 「살아 있는 건 다 신기해」로 우리를 동물과 함께 하는 삶으로 데려간다. 떠난 연인이 채식주의자여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어 이별 후에 고기에 기갈이 들려 무지막지하게 먹게 되는 이야기 「무민은 채식주의자」. 산란계가 아닌 육계의 운명으로 태어난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말하는 닭의 목소리가 담긴 「오늘의 기원」. 동물권을 주제로 한 짧은 소설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오래 다정한 것에 굶주려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명희의 소설 「손을 흔들다」에서 장님 소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외로운 건 다른 걸로 채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리운 건 다른 걸로 채워도,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거예요."


  외로운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그립지 않기 위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다. 어느 저녁, 지친 나의 뒤를 따르는 누군가에게 바쳐지는 소설 『무민은 채식주의자』를 통해 무섭고 두려웠던 유년의 기억의 색채가 옅어지기를 희망한다. 소설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