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른다섯이 되던 어느 해 화요일 한 여자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 『우리가 추락한 이유』는 만만한 소설이 아니다. 첫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개되는 사건 자체도 독자를 뒤로 넘어가게 할 정도로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교수이자 학자인 어머니를 둔 레이철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어머니는 우리를 버리고 떠난 사람이므로 알 필요 없다는 말로 때론 시간이 흐르면 알려준다는 핑계로 그의 존재를 감추려 든다. 결국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레이철은 아버지라는 비밀의 문을 열 열쇠를 받지 못한다. 


  연애. 결혼. 불화. 이유는 남편의 이중생활. 배신. 살인이라는 뻔한 전개를 상상했다면 큰코다친다. 현란한 이야기 구성과 반전의 대가, 데니스 루헤인은 결혼이라는 식상한 소재를 선택해 놓고도 구질구질하게 소설을 끌고 나가지 않는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는 독자를 이러 저리 끌고 다니면서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대충 이런 이야기겠군이라는 생각으로 읽어가다간 소설의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반전의 향연에서 숨이 넘어갈 수도 있다. 


  끝내 아버지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고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레이철은 스스로 비밀을 밝히려고 한다. 사설 조사원 브라이언 델라크루아를 만난다. 그는 양심적인 조사원이었다. 레이철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희박하고 돈을 더 써도 아버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조사원에게 맡긴다면 유산을 상속받은 여자의 돈 냄새를 맡고 바가지를 씌우고도 알 수 없음이라는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냉철하게 충고한다. 레이철은 어머니의 유품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녀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가 접근해 자신의 추문을 덮을 기사를 써준다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준다고 말한다. 레이철은 기사를 역으로 써서 결국 아버지의 이름을 알아내는데 성공한다. 


  소설은 레이철의 아버지 찾기와 그녀가 기자로서 성공을 하는 시점에 찾아온 공황발작으로 인해 망가지게 된 커리어를 다룬 1부. 우연히(정말 우연이었을까) 만난 브라이언과의 생활을 다룬 2부 그리고 레이철이 스스로의 둥지를 박차고 나와 활약을 펼치는 3부로 나뉜다. 단서도 없이 아버지를 찾느라 헛돈 쓰지 말라고 충고했던 조사원 브라이언과는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과 직장 생활에 실패한 그녀 앞에 나타난다. 추근대는 남자를 가볍게 물리쳐주는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장면을 배경으로 말이다. 


  비 오는 거리를 함께 걸으며 가까워진 그들은 곧장 결혼을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남편이었다. 발작 증세로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레이철을 안쓰러워하고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는 남편. 레이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언제나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그와의 결혼 생활은 끝까지 갈 줄 알았다. 지금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할 남편을 거리에서 마주친 그 시간 전까지!


  그때부터 남편 브라이언의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의 전부를 알지 못한다. 그가 자신에 대해 말한 것들에 진실이 있었나. 소설은 사랑에 배신당한 한 여자의 복수극으로 후반부를 끌고 가지만 데니스 루헤인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작가가 아니다. 그들은 판을 깔아 놓고 서로가 덫에 걸리기를 기다린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거짓이 난무하는 가정 호러극인 『우리가 추락한 이유』는 놀랍게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브라이언은 뻔뻔하게도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도 레이철에게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사랑, 사랑이라. 레이철은 자신에게 닥쳐온 우울한 비밀로 싸인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걷어차 버린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남자의 입에서 말해지는 사랑에서 우리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이유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를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면 이 소설의 첫 시작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는 마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녀가 그럴 줄 늘 알았다는 듯이, 드디어 확인되었다는 것처럼 묘한 표정을 하고 뒤로 쓰러졌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으나 믿음 없이는 버텨 나가지 못하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 반전과 스릴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데니스 루헤인 식의 가정 호러 서스펜스 스릴러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